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리우올림픽)에는 역사상 처음 '초국가 드림팀'이 출전한다. 나라도 피부색도 언어도 다르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소망과 열정으로 뭉쳐 있다. 모든 출전 선수가 그렇듯 첫 번째 목표는 개인의 승리와 팀의 성적일 테지만 이들에겐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난민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2020 도쿄올림픽에는 우리 팀이 없어지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가 조국을 위해 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상 첫 ‘난민 대표팀’ 탄생
“14세부터 수영을 삶으로, 수영장을 집처럼 여기면서 살았어요.”
라미 아니스(25)는 5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 알레포 출신이다. 그는 2011년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총격전과 테러를 피해 가족과 함께 터키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지내면서 꾸준히 수영 훈련을 했던 그는 이후 고무보트에 몸을 실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벨기에로 갔다. 지난해 12월 벨기에에서 망명이 허가된 뒤에는 국가대표 출신 카린 버바우엔의 지도를 받고 있다. “두어 달 터키에 있다가 돌아갈 줄 알았던 제가 올림픽까지 출전하게 됐네요.” 그는 100m 접영 종목에 출전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6월 3일 지구촌 난민의 어려움과 심각성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난민대표팀(Refugee Olympic Athletes)을 출범시켰다. 선수단에는 10명이 이름을 올렸다. 아니스를 포함해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 2명,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유도선수 2명, 에티오피아 출신 마라톤선수 1명, 남수단 출신 중거리 육상선수 5명이다. 이들은 다른 국가대표팀과 동등한 자격을 갖고 메달을 목표로 경기에 임한다. 개막식에선 IOC 깃발(오륜기)을 들고 주최국 브라질보다 앞서 행진한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집도 팀도 국기도 국가도 없는 난민이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동안 이들은 숙소를 제공받는다. 이들이 가는 곳에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질 것이며 오륜기가 펄럭일 것이다. 이들은 전 세계 난민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동안 난민들이 보호국이나 중립국 깃발 아래 세계대회에 출전한 적은 있지만 ‘난민팀’을 꾸려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IOC는 올림픽 이후에도 출전한 난민선수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IOC는 올 초부터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수단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과 망명 신청자 60만명이 머무는 케냐의 카쿠마·다다압 난민캠프에서 선수를 물색했다.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부터 자국에 머무는 난민 중 올림픽 출전을 희망하는 선수를 추천받았다. 이렇게 모인 43명이 몇 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다. IOC는 200만 달러(약 22억3000만원)를 들여 최고 지도자와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이들 중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은 10명만이 ‘난민대표팀’ 이름으로 리우에 가게 됐다.
“가족에게 소식 전할 수 있어 기뻐요.”
이들의 사연은 한 편의 영화다. 시리아 출신 유스라 마르디니(18)가 지난해 8월 고무보트를 타고 고향을 떠날 때만 해도 올림픽 출전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목적지인 독일 베를린으로 가는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에게해를 건널 때는 구멍이 뚫려 가라앉을 뻔한 고무보트를 몸으로 밀면서 3시간30분을 수영해 그리스 레스보스에 도착했고, 이후 25일 동안 1600㎞를 이동해 베를린에 발을 디뎠다.
2012년 터키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시리아 대표 단거리 주자로 나섰던 그는 난민캠프에 수용된 후 수영장을 찾아 훈련을 시작했다. 이번엔 100m 자유형과 100m 접영에 출전한다.
그는 “물 안에선 난민이나 시리아인이나 독일인이나 아무 차이가 없어요.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이 경험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유도 여자 70㎏와 남자 90㎏급에 각각 출전하는 콩고 출신 욜란데 부카사 마비카(28)와 포폴레 미셍가(24)는 1996년 시작된 내전의 상처로 가족과 헤어져 난민캠프에서 10여년을 살았다. 우연히 배운 유도에 푹 빠져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이겨냈다고 한다. 좋은 실력으로 두각을 보인 두 사람은 콩고 대표로 발탁돼 아프리카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경기에 나가 이기지 못하면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받지 못했고, 심지어 감금되는 학대를 당했다.
3년 전 두 사람은 제29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리우에 도착했다가 함께 도망쳤다. 현지 단체의 도움으로 리우에 터를 닦고 살고 있다. 마비카는 “소식을 가족에게 전할 기회가 생긴 것이 가장 기쁘다. 브라질에 온 뒤 가족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셍가도 “경기하는 모습을 가족이 본다면 연락하길 바란다. 빨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성화 봉송에도 난민 2명이 나섰다. 시리아 출신으로 브라질의 보호를 받는 소녀 하난 다가흐(12)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다른 봉송자 이브라힘(27)은 다리 부상으로 안타깝게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뒤 성화를 옮기는 역할로 힘을 보탰다. 그는 “이 일만으로도 나는 꿈을 이뤘다”고 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후 120년 동안 이런 팀은 없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 난민은 5950만명으로 추산된다. 국가별 인구 순위 24위에 해당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한국보다 약 800만명이 더 많다. 리우올림픽의 공식 슬로건은 ‘새로운 세상(New World)’이다. 난민대표팀에 소속된 선수 10명에게 리우올림픽 출전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월드이슈] 난민들이 뭉쳤다… ‘초국가 드림팀’ 첫 출전
입력 2016-08-01 18:45 수정 2016-08-01 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