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흙공 빚으며 마음의 모서리 깎아보세요”

입력 2016-08-01 18:35
지난 달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수자-마음의 기하학’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찰흙으로 공을 빚고 있다.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윤성호 기자
야외 조각 ‘연역적 오브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수자 작가. 이 타원형 색동 조각 작품은 네모난 거울 위에 설치돼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비침으로써 ‘몸과 기하학의 관계’를 느낄 수 있다.
운동장의 트랙 하나를 번쩍 들어 대형 전시장에 넣은 줄 알았다. 길이 19m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에 엄마와 아이, 남매와 친구, 구불구불 금발의 서양 여성, 조선족 등 국적과 남녀노소를 망라한 다양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찰흙으로 공(구)을 빚는다. 이따금 키득거리기도 하는, 목소리가 즐겁다. “가글가글∼ 보글보글.” 양치물을 게워낼 때 내는 효과음이 귀가 아니라 의자에 앉은 그들의 무릎 위로 간질이듯 지나간다.

지난 달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5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 김수자-마음의 기하학’전은 관람객의 놀이마당이 됐다. 퍼포먼스, 사운드, 영상, 조각 등 9점이 선보이는데, 압권은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프로젝트 ‘마음의 기하학’이다.

개막 3일째임에도 테이블 위에는 참가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크고 작은 공들이 잔뜩 쌓였다.

“공의 크기와 색깔이 다양해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에요.”

이날처럼 비가 오는 날, 수제비를 끓이기 위해 반죽을 치댔을 주부 고미영(서울 은평구·40)씨는 찰흙의 낯설지 않은 촉감을 즐기며 초등생 두 아들과 나란히 앉아 클레이볼(찰흙공)을 빚는다.

‘보따리 작가’로 불리는 김수자(59)는 현대차가 중견작가들이 작품 제작비 부담 없이 과감하게 대형 설치, 영상 작품 등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이불, 안규철에 이어 세 번째다.

김 작가는 “도자기 작업에 관심을 갖게 돼 찰흙을 사서 만졌는데, 촉각성, 원초성에 놀라움을 느꼈다”며 “흙을 만지는 행위가 보따리를 싸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보자기로 싸듯, 두 개의 극점(손)이 만나 중심을 향해 밀어낼 때 구가 형성되는 논리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보따리 수백 개를 트럭에 싣고 11일 동안 전국을 달리는 퍼포먼스(‘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km’)로 유명해졌다. 설치,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물질성과 비물질성, 이동성과 부동성 등 이중성(듀얼리티)에 일관되게 관심을 보여 왔다.

“보따리는 물질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감싸 안는 것은 흔적과 기억 등 비물질적인 것이다. 이번 작업도 찰흙, 즉 물질을 갖고 놀지만, 이는 ‘마음의 모서리’를 깎는 행위이다.”

테이블은 그 자체가 거대한 캔버스다. 관람객들이 빚어 테이블에 올려놓은 크고 작은 공은 회화로 변신하는데, 작가가 천장에 CCTV를 설치해 이를 평면처럼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몸과 공간의 관계를 기하하적으로 실험하는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작가가 10년간 사용해 엉덩이 자국이 밴 요가 매트를 작품처럼 걸거나, 삼각형 사각형 등 기하학을 연상시키는 동작을 취한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을 실크스크린 한 작품, 호흡을 음파 그래픽으로 표현한 ‘디지털 자수’ 등이 그렇다. ‘우주의 알’로 불리는 타원형 색동 조각은 야외에 설치돼 다양한 각도에서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안규철 작가는 필사, 포스트잇 붙이기 등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올해 역시 찰흙 빚기라는 원초적 체험을 통해 ‘몸과 기하학’ ‘물질과 비물질’ 등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자연스럽게 깨치게 유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안 작가는 “관객은 미술적 테크닉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글쓰기 등 참여 가능한 아주 쉬운 방법으로 관객을 초대한 것이다.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 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