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일터-문애란] 하찮은 일과 고귀한 일

입력 2016-08-01 21:02

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분들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회사들은 파산해 모두들 패닉 상태에 있을 때였다. 나의 광고주이자 참 단단하게 회사를 운영하던 멋진 사장님이 그 바람을 막지 못하고 파산했다. 나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우연히 만나 뵌 그분의 얼굴이 참 밝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었더니 아파트 경비원을 하신다고 했다. ‘아…’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밝은 얼굴 때문에 근황을 여쭈어 볼 수밖에 없었다. 부채를 청산하고 나니 집 한 칸 남지 않았던 이 사장님은 강남의 작은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으로 취직하셨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첫날, 그는 “이 아파트에 사시는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자”고 다짐했다.

그 동에 사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짐을 집 안까지 옮겨 드리고,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우편물은 물론 아이들까지 지켜봐줬다.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치웠다. 얼마 되지 않아 이 분은 그 아파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분이 되었다.

이 사장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분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사랑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손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일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팀 켈러의 일과 영성’)는 글을 읽고, 전업주부로 있으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자책하던 친구에게 이 책을 권한 적이 있다.

예수님은 목수셨고 사도 바울은 텐트메이커였다. 열왕기하 5장 2∼3절에는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이 깨끗이 나은 이야기가 있다. 그가 나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서였는가. 포로로 잡혀서 나아만 장군 집에 있던 하녀가 그의 병을 안타깝게 여겨 ‘이스라엘의 예언자라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닌가. 만일 그녀가 나아만 장군이 자기 나라의 적이라고만 생각해 그냥 ‘하인으로서 일만 잘하면 됐지’라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하찮은 일, 고귀한 일의 잣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가를 주님은 보실 것 같다.

체면, 우월감, 자만심, 질투, 상대적 박탈감, 이기심 등. 일을 하면서 이런 것들로 마음이 채워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문애란 G&M글로벌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