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이야기] 목사와 돈

입력 2016-08-01 21:10

26년 전 신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지방의 한 소도시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소명을 받고 시작했지만 개척자금으로 모아 놓은 돈도, 특별한 후원자도 없었습니다. 마침 전세로 살던 집 거실이 비교적 넓은 편이어서 거기에 방석을 20여개 깔아놓고, 보자기로 덮은 신발장을 강대상 삼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꼭 열 달 만에 약간의 보증금과 매월 20만원의 월세를 내는 조건으로 도로변의 3층짜리 건물로 예배처소를 옮겼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매 주일 드려진 헌금은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가 월말에 건물주에게 몽땅 바쳐야 하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외식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청년들과 대학생들이 주로 모인 교회였기에 아내는 주일마다 김치를 담고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대접했지만 재정은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어느 날 모처럼 큰맘 먹고 같이 사역하던 전도사님 부부와 외식을 하기 위해 식당엘 갔습니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그 지역에서는 꽤 소문난 맛집이었습니다. 칼국수를 네 그릇 시켜서 먹고 있는데 우리보다 먼저 와서 식사하던 다른 식탁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습니다. 그 상을 쳐다보니 먹다 남긴 수육이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식당 아줌마는 식탁을 치우러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얼른 그 접시에 있는 수육을 집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습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아니었기에 몰래 훔쳐 먹는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차피 음식물 쓰레기가 될 것이니 먹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합리화를 시키며 말입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은 칼국수를 후루룩 들이키고 재빨리 그 식당을 빠져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식당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자녀들이 다 커서 아들은 결혼을 했고 딸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우유를 한 팩 사서 이틀 동안 두 아이에게 나눠 먹여야 했습니다. 지금은 냉장고에 언제든 마실 수 있는 우유가 넉넉히 진열돼 있습니다.

때때로 칼국수 집에 가서 수육을 시켜 먹을 때마다 예전 그날을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신 하나님, 내 잔이 넘치나이다.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이런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됐을까 생각합니다. 다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허태성 목사

◇약력=△합동신학대학원대 졸업, 미국 리폼드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합동신학대학원대 법인이사 등 역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세계선교회 이사, 정암장학재단 법인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