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사드 배치와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가운데 격랑에 빠진 동아시아 정세의 향후 방향을 보여주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가 폐막됐다. 한국은 북한이 유일하게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다자회의 ARF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일단 중국과 소통해야 했다. 또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 저지에 대한 국제 공조를 확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했다. 일단 한국은 폐막 하루 후 발표된 의장성명에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날짜까지 명기하고 아세안 차원에서 북핵 반대를 반영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상대적으로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불만을 이용해 국제적 대북 공조를 와해시키고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던 북한의 시도는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실질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고, 중국의 의도적인 대북 껴안기를 지켜봤다.
중국에는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AC)가 남중국해 영유권 불인정 판결을 내린 가운데 남중국해 문제의 당사국들과의 첫 번째 조우였다. 또 한·미 양국에 한반도 사드 배치 불가 의지를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일단 중국은 의장성명에서 미국이 의도했던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PAC의 판결 내용 언급을 배제시켰다. 오히려 아세안 10개국과의 외교장관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이미 제정된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 선언(DOC)’의 실천을 통해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자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나아가 관련국들의 개별 이익이 다른 점을 이용해 남중국해 문제가 중국과 아세안 간의 집단적 문제가 아니라 ‘분쟁 당사국들 간 개별 문제’라는 ‘중국식 해결 방안’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연히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국을 배제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전략적 변화를 보였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국제 판결 준수나 북핵 위협 심화로 인한 사드 배치의 정당성 강조가 예상됐었다. 하지만 중국이 PAC 판결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중국이 아세안에 대해 갖는 확고한 우월적 지위와 영향력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중국해에는 ‘어떤 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PAC 판결은 중국의 분쟁 당사국들은 물론 동중국해의 일본 인공섬 오키노도리도 부정될 수밖에 없어 배후에서의 대중국 파상공세가 불가능한 측면도 있었다. 올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세안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공해(公海)의 ‘자유항행 원칙’ 수호자를 명분으로 한 대중국 공동전선 구축도 벽에 부닥쳤다. 이는 ARF 폐막 후 필리핀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게 판결문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중국과 소통하라는 주문을 한데서도 잘 나타난다.
같은 맥락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미국은 ARF 기간 중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중국에 보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사드 배치가 동맹국 간의 결정임을 설명했다. 사드 배치 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의장성명에서 사라진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중국 역시 9월 항저우에서 열리는 G20 회의를 앞두고 시장경제 지위 확보 등에 있어 미국의 협조가 절대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한국을 냉대하고 북한을 환대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재천명하고 의장성명에서 북핵 불용 의지가 명시됐다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서의 힘겨루기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음에 유의하자. 이 세상에 전능(全能) 국가는 없다. 스스로를 추스르는 자신감을 갖자.
강준영 중국정치경제학 한국외대 교수
[한반도포커스-강준영] 급변 동아시아, 전능 국가는 없다
입력 2016-07-31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