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르는 새들과 매미들이 바쁘게 울어대는 아침, 나는 산속에 있다. 이 산속에는 흰줄무늬 고양이, 검은 고양이, 검은 개 두 마리가 시인과 시인의 아내와 살고 있다. 나는 시인의 아내가 내어준 어떤 방에 누워 꿈을 꾼다. 매미와 새소리가 녹아서 내 꿈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아주 많은 글들을 꿈속에서 쓴다. 내가 꿈속에서 쓴 글들을 엮는다면 나는 아주 굉장한 작가가 되어 있을 텐데…. 꿈을 깨면 그 글들은 사라져 아주 인상적인 장면들과 단어만 몇 개 남는다. 깨고 나면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 일어나자마자 우울한 적도 많다. 그래도 나는 꿈으로부터 와서 현실에 남겨진 단어 몇 개를 조합하여 시도 쓰고, 이야기도 만들어낸다. 내 꿈은 시의 재료로 써도 될 만큼 고통스럽고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현실의 일들보다는 시시하다.
요즘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이것이 꿈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하고,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내가 사는 현실에서 엄연히 벌어지는 일들이고, 나는 이곳에 살고 있다. 나쁜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지만, 꿈이 아니라서 깰 수도 없는 상황.
산속의 방에서 꾼 꿈속으로 들어온 매미소리와 새소리는 외국인 사제들의 목소리가 되어 라틴어 기도문을 외우며 돌아다닌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기도문 소리를 들으며 노트북을 펼쳐 신문의 칼럼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제복을 입고 있는 파란 눈의 남자가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열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지만 입만 벌렸을 뿐 아무런 소리도 나가지 않았다. 남자는 나에게 뭘 기다리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말을 듣고 나자, 나의 노트북은 다리미가 되어 있었고, 나는 다림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다리미판에 펼쳐진 천을 다시 자세히 보았는데 그것은 천이 아니었고 출렁거리는 물이었다.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위에 뻐금거리는 금붕어처럼 떠오르는 글씨들을 다리미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유형진(시인)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꿈에서 쓴 글
입력 2016-07-31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