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피해자의 눈물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 대표 등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436명은 지난 5월 옥시와 살균제 판매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여론이 들끓자 옥시는 영유아 사망자 가족에 10억원을 배상하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소송을 낸 유족들이 이보다 대폭 늘어난 배상액을 소송에서 받아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에는 제품 결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배짱 영업
배기가스 조작 사태를 일으킨 독일 폭스바겐은 최근 미국 소비자에게 147억 달러(약 17조4000억원)를 피해배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소비자 47만5000여명이 최고 1만 달러(약 1136만원)를 받는다. 폭스바겐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별다른 배상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선 일반적인 집단소송제도가 없어 개별 소비자가 일일이 소송을 내야 한다. 현재 폭스바겐 공동소송에 참여한 원고는 4500명 정도다.
개인정보는 10만원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 이용자 정모(27·여)씨는 최근 해킹사고로 정보 유출 피해를 입었다. 소송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봤지만 소송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배상액이 통상 10만원 정도에 불과해 큰 실익이 없을 것 같아서다. 인터파크 해킹 피해자는 1030만명인데 정보유출 소송 인터넷 카페 가입자는 28일 기준 7500명 정도다.
대우조선 분식회계에도…
김모(31)씨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소식을 접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2년 전 산 대우조선 주식의 주가가 6분의 1 정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등 증권 관련 사건에는 소액주주들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법무법인 한누리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소액주주 119명을 대리해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집단소송 형식으로 내지 않았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법원이 허가하는 데만 길게는 6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車·包 떼인 한국 소비자
최근 폭스바겐 사태 등이 잇달아 터지며 기업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다. 기업이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하고, 정부가 이를 관리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소송에 기댈 수밖에 없다. 법정에 간다고 해도 제대로 구제받기는 쉽지 않다.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 도입된 집단소송제도가 한국에선 일부 분야로 제한돼 있다.
집단소송제도는 대표자가 소송을 내면 효력이 전체 소비자에게 미친다. 소송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한 소비자를 뺀 모든 잠재적 피해자에게 적용돼 파급효과가 크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일 때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액을 물린다. 기업은 해외의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면 막대한 배상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합의에 나서는 등 소비자 구제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보유출이나 분식회계 등 피해가 명백해도 기업이 “소송으로 끝까지 가보자”며 배짱을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거대 기업 앞에 ‘차포’를 떼고 맞서야 하는 게 대한민국 소비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최대 10배 배상까지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4년 동안 진전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의 손해배상을 순자산의 최대 10%까지 부과하는 특별법을 추진 중이다. 박영선 의원은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재계는 강력 반대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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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30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