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맘마미아’가 1999년 런던 웨스트엔드에 올라 대성공을 거둔 후 영미 뮤지컬계는 주크박스 뮤지컬 붐이 불었다. 2002년엔 세계적인 인기그룹 퀸의 음악으로 만든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도 나왔다.
2008년 내한공연을 가지기도 했던 ‘위 윌 록 유’는 악기와 록음악이 사라진 획일화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자유를 찾아 저항하는 보헤미안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이자 ‘미스터 빈’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벤 엘튼이 대본을 썼다.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평단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특히 대본에 대해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록 스토리에 빈 틈이 많지만 퀸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팬들 덕분에 이 작품은 2014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런던에서 장기공연됐다. 또한 초연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년 해외 투어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퀸의 멤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런던 프로덕션의 첫날, 10주년, 마지막날 등 특별한 날에는 직접 무대에 올라 연주함으로써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서태지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페스트’는 여러 면에서 ‘위 윌 록 유’를 떠올리게 한다.
까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 역시 획일화된 미래사회가 배경이다.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관리하고 기억을 통제하는 시스템화된 도시에서 페스트가 발생한 뒤 사람들이 연대해서 물리친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데, 까뮈와 서태지의 공통코드인 ‘저항’과 ‘연대’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했다. 의사 리유, 식물하자 타루, 기자 랑베르 등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의 이유가 구체적이지 않거나 단선적이라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까뮈의 소설에서 가져온 듯한 이들의 대사는 대체로 길고 설명적이었으며, 일부 장면에선 교훈적이기까지 했다.
빈약한 드라마에 비해 서태지의 음악은 클래식한 발라드부터 댄스, 록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뽐내며 뮤지컬 넘버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만 서태지의 아우라를 너무 의식한 듯 차별성을 가지기 위해 원곡의 편곡을 과하게 한 부분도 있었다. 서태지 팬들은 편곡을 통해 좋아했던 노래를 새롭게 즐길 수 있지만 서태지 팬이 아닌 경우에는 솔로 시절의 음악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대표곡들인 ‘너에게’ ‘환상 속의 그대’조차 편곡한 것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미덕인 ‘따라부를 정도의 친숙함’을 주지 못해 아쉬웠다.
창작 초연인만큼 이 작품은 앞으로 수정보완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는 서태지 팬들을 위한 뮤지컬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퀸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로도 장기공연한 ‘위 윌 록 유’처럼 ‘페스트’도 서태지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만으로도 객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처럼 서태지가 무대에 등장한다면 더욱 길게 갈 수 있다.
장지영 기자
서태지 노래로 엮은 서태지 팬을 위한 무대… 카뮈 소설 원작 뮤지컬 ‘페스트’
입력 2016-07-31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