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학 강의실은 교수와 학생이 노니는 작은 연못 같았다. 입학시험과 비싼 학비란 관문을 뚫은 학생, 학계와 대학으로부터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은 교수들이 만드는 폐쇄된 ‘지식 생태계’다.
반면 바깥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무크(MOOC·온라인공개강좌) 서비스로 미국 하버드나 예일대의 명품 강의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공부하고 시험을 치른 뒤 통과했다는 인증서를 받는 시대다. 무크에는 ‘지구촌 대학’이란 별명이 붙었다.
국내에서도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대학들이 지난해 10월 한국형 무크(케이-무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중·고교생과 대학생, 일반인은 물론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도 국내 대학이 만든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많아야 수백명의 학생 앞에서 강단에 오르던 교수들은 최대 수만명에 이르는 수강생과 만나게 됐다. ‘무크의 바다’를 맛본 교수들은 무크가 가져올 변화를 기대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스타 교수’의 탄생
케이-무크 최고 인기 강좌는 서울대 이준구 명예교수의 ‘경제학 들어가기’다. 1만명 넘는 학생을 받게 된 이 교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뒤로 처음 보는 외부인으로부터 ‘잘 듣고 있다’는 인사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이 교수의 강의를 듣고 경제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고등학생의 이메일도 많이 받고 있다. 이 교수는 “색다른 기분”이라고 말했다.
‘논어: 사람의 사이를 트는 지혜’를 선보인 성균관대 신정근 교수는 ‘교수법’에 대한 동료들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신 교수는 “논어를 텍스트로만 가르치면 지루한 수업이 될까 봐 유적지 답사 등 현장감 있는 다양한 매체와 결합해 수업을 진행했는데 같은 분야 전문가들이 이런 수업 방식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다. 신 교수는 케이-무크가 교수들한테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이나 경제 등 사회적인 수요가 많은 분야 교수진에는 외부 강연료 등의 ‘몸값’을 올리는 요소가 되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를 강의하는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는 “강의를 들은 다른 대학 교수들과 기업 대표들을 통해 외부 기획회의, 전략회의에서 내 강의가 언급되는 일이 잦아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전했다. ‘창의적 발상: 손에 잡히는 창의성’을 강의하는 성균관대 박영택 교수는 케이-무크가 교수들에게 국경을 넘나드는 ‘지식 봉사’이면서 ‘홍보 수단’이 된다고 봤다. 박 교수는 “7월 중순쯤 미국 무크인 에덱스 관계자로부터 강의 성공 요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었다”고 말했다.
교차하는 기대와 우려
교수들은 케이-무크를 빼고 고등교육의 미래를 얘기할 수 없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 교수는 케이-무크를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양질의 코스 요리’로 빗댔다. 그는 “단순한 외부 강연이나 대학 내 강의와 달리 케이-무크는 온라인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대학의 고급강의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고등교육에 획기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류 교수는 “대학 교육은 그동안 학과 이름만 보고 정보를 온전히 알지 못한 채 구매하는, 지식서비스 산업 측면에서 ‘불공정 거래’였다. 케이-무크 강의를 들어보고 진학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교육 민주화’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씨가 안 보이는 칠판, 주의가 산만한 교실을 참기 힘들어하는 ‘인터넷 강의 세대’가 대학의 주류가 됐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교수는 케이-무크가 대학 교육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봤다. 정규 과목을 대체하기에는 현재 분량과 형식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강좌를 업데이트하는 방식도 고민거리라고 했다. 온라인 강의 특성상 부분 편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책을 내면 5년마다 개정을 한다. 현재 올라와 있는 내 강의는 지난해 촬영한 것인데 언제마다 갱신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무크 강의처럼 현장 강의를 녹화하는 방식이라면 별도로 촬영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나의 교수법, 한 사람의 스타 교수가 ‘최고’라는 고정관념은 대학사회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진다. 신 교수는 “현재 케이-무크 방식은 같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강의가 열리는 데 한계가 있어 자칫 하나의 강의가 ‘정답’처럼 굳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케이-무크, 교육변혁 이미 시작됐다] 온라인판 ‘스타교수’ 탄생… 교수사회도 지각변동 예고
입력 2016-07-31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