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나의 운명-김잔디] “두번 실수는 없다… 20년 숙원 금맥 이을 것”

입력 2016-07-30 00:02
한국 여자유도 국가대표 김잔디(흰 도복)가 지난해 7월 6일 광주 서구 염주빛고을체육관에서 열린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57㎏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쿠바의 아나이리스 도르비그니에게 조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 시상식에서 아쉬운 표정으로 은메달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 뉴시스

1996년 7월 23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월드콘그레스센터. 올림픽 여자유도 68㎏급 결승전이 열린 이곳에서 조민선은 폴란드의 아네타 슈체팜스카를 통쾌하게 한판으로 메쳤다. 네덜란드의 클라우디아 즈비어스와 대결한 준결승까지 모두 한판승으로 제압하고 파죽지세로 질주한 조민선이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메달이 한국 여자유도의 마지막 금메달일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유도에 여자부를 신설한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김미정·72㎏급)부터 한국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조민선을 마지막으로 금맥은 끊겼다. 종주국 일본은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 간판스타 다무라 료코를 앞세워 여자유도를 본격적으로 장악했다. 중국 쿠바 프랑스는 일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공략해 금메달을 챙겼다. 하지만 한국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2012 런던올림픽까지 16년 동안 여자유도 시상식에서 애국가는 울리지 않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리우올림픽) 여자유도 57㎏급에 출전하는 김잔디(25·양주시청)의 표정은 그래서 비장하다. 김잔디는 한국 여자유도의 20년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 도복을 고쳐 입었다.

스스로에게도 중요한 과제다. 김잔디는 이미 한 차례 출전한 올림픽에서 쓰라린 좌절을 경험했다. 런던올림픽 57㎏급 16강전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줄리아 퀸타발레에게 한판패를 당하고 조기 탈락했던 것이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로 자신감을 쌓고 올림픽 메달권 진입을 목표로 삼았지만 그 근처까지 다가가지도 못했다.

너무 어렸고 서툴렀다. 김잔디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퀸타발레는 노련하게 방어하면서 지도와 유효를 빼앗아 침착하게 점수를 확보했다. 경기 종료를 34초 전 다급하게 덤빈 김잔디를 되치기로 제압해 한판승을 거뒀다. 김잔디의 입장에선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퀸타발레를 너무 일찍 만난 대진의 불운이 컸다. 하지만 부족한 경험과 기량 차이를 부정할 수 없었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김잔디는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전국체전 전국체급별선수권대회 등 국내대회부터 그랑프리 월드컵,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국제대회까지 가리지 않고 출전했다. 유도에서 가장 큰 대회 중 하나인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자신감을 충전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등 더 큰 규모의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시상대 밖으로 밀린 적은 없었다.

팀 훈련이 끝나도 쉬지 않았다. 오후 10시30분까지 유도장에 남아 야간 개인훈련을 이어갔다. 주변에서 예쁘다고 장외활동을 부추겼지만 외모를 가꿀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이를 악 물고 4년을 버텼다. 이제 한국에서 김잔디를 넘어설 선수는 없다. 세계 랭킹은 2위다. 여자유도 57㎏급에서 김잔디보다 순위가 높은 선수는 몽골의 수미야 도르수렌뿐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여전히 쉬운 도전이 아니다. 하지만 김잔디는 성취욕과 목표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 김잔디는 지난달 21일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유도대표팀 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런던올림픽에서 실패했던 아픔을 잊지 않았다. 그땐 성숙하지 않았다”며 “이제 4년이 흘렀다.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서정복 유도대표팀 총감독은 김잔디를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보고 있다. 서 감독은 “김잔디가 이번엔 애틀랜타올림픽부터 20년 동안 풀지 못한 한국 여자유도의 한을 리우올림픽에서 풀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유도회는 12명의 유도대표팀 선수들(남자 7명·여자 5명)을 리우올림픽에 파견한다. 김잔디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브라질로 입성했다. 지금은 상파울루 이비라푸에라 유도아카데미에서 현지 적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김잔디와 유도대표팀 선수들은 리우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8월 4일 개최도시 리우데자네이루로 이동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