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제물포에 발을 내린 유진 벨 선교사는 한국어 선생 변창연 조사와 함께 1898년 목포 북촌에 양동교회를 개척한다. 1899년 선교지 목포에서 딸 샬렛 벨을 낳는다. 이어서 정명여학교, 영흥학교, 프렌치병원 등도 설립한다. 1904년에는 광주 양림동에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설립한다.
유진 벨 선교사의 딸 샬렛 벨은 1922년 윌리엄 린튼 선교사와 결혼한다. 1926년 윌리엄 린튼과 샬렛 벨은 선교지 군산에서 셋째 아들 휴 린튼를 낳는다. 1937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맞서 전주 신흥학교를 폐쇄한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 위해 학교를 폐쇄한 것이다. 1940년 결국 강제로 추방당한다. 광복과 함께 1946년 전주로 돌아 온 윌리엄 린튼은 제일 먼저 신흥학교를 복교한다. 기전여학교 신사 터에 공중화장실을 짓는다. 신사 위에 똥통을 얹어서 보복한 것이다. 1956년에는 숙원이었던 기독대학 한남대학교를 대전에 설립하고, 1960년 소천한다.
아버지 윌리엄 린튼과 함께 추방당한 휴 린튼은 1945년 미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일제에 맞서 싸운다. 1950년 재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다. 휴전과 함께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들어 온 휴 린튼은 남해안 지역에 600여 교회를 개척한다. 순천에 66만1157㎡(20만평)을 간척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 아내 로이스 린튼은 결핵요양원 순천기독결핵재활원을 설립한다. 세 아들이 결핵에 걸리는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결핵퇴치 사업을 이어간다.
1984년 휴 린튼은 개척교회에 쓸 건축자재를 차에 싣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관광버스 운전사의 음주운전으로 사고가 난 것이다. 그는 택시로 광주기독병원으로 후송 되던 중 사망한다. 앰뷸런스가 없어서 사망했다.
1992년 휴 린튼의 미국 친구들이 조의금 4만 달러를 한국에 있는 아내 로이스 린튼에게 보낸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 존 린튼(인요한)은 조의금으로 봉고를 개조해 앰뷸런스를 제작한다. 첫 번째 한국형 앰뷸런스다(사진 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지를 두루 다녀서 앰뷸런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1995년 제2호 한국형 앰뷸런스를 만든다(아래). 전국 소방서와 병원에 바로 이 앰뷸런스 3000여 대가 활동 중이다. 매년 100만 건 이상 출동하고 있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약력=△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묵동교회 부목사 △한국관광학회 부회장
[최석호의 미션 핫플레이스-한국형 앰뷸런스] 한국사랑 100년의 특별한 선물
입력 2016-07-29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