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국내 최대의 온라인마켓인 옥션에서 개인 정보유출 해킹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이 분주해졌다. 몇몇 변호사들이 경쟁적으로 소송 참가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실비로 1만∼3만원을 받거나 아예 비용을 받지 않고 성공보수만 일정 비율로 받겠다는 변호사들도 있었다.
막상 소송에 참여하려는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소송으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기대액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1081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소송을 낸 사람은 1%가 조금 넘는 14만6000여명에 불과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옥션이 정보 보호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비자들에게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킹을 막지 못한 건 잘못이지만, 관리가 소홀해 생긴 일로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집단소송이 도입돼 있지 않은 한국 상황에서 기업에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제각각 공동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 상대 공동소송에서 법원이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사례는 많지 않다. 정보유출 사고 소송을 대리했던 서울의 한 변호사는 29일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 등 기업 측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며 “기업 상대 소송은 질 가능성이 높고 다수 원고들을 관리하는 것도 어려워 공동 소송을 내는 게 꺼려진다”고 말했다.
LPG 담합 사건 소송도 대표적인 공동소송이지만 진행 과정은 지지부진하다. LPG 가격을 담합한 SK와 GS칼텍스 등을 상대로 개인택시기사 1만명이 2010년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6년째 1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의 최장기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손해액 산정을 위한 감정인 선정을 두고 2년째 소송이 제자리걸음이다.
카드3사(KB국민·NH농협·롯데) 정보유출 사건에서는 하급심에서 판결이 엇갈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소비자가 최종 승소한다고 해도 배상액은 개인당 1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정보유출 부문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손해액의 최고 3배 배상이 한도라 기업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업이 망할 정도로 고액의 배상액을 물려야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에서 정부의 관리 부실 책임을 인정하는 데도 인색한 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등 4명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정부의 관리 부실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패소 판결했다.
나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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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1%만 소송 참여… LPG 가격 담합 관련 사건 소송은 6년째 1심 중
입력 2016-07-29 17:30 수정 2016-07-29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