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합헌 결정은 언론·사립학교 관계자들이 제한받을 사익보다 부정청탁 금지로 얻는 공익이 크다는 판단이다. 언론과 사학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도 있지만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관행을 방치하는 것은 더욱 큰 해악이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법률 시행이 되기도 전인데 국가의 공권력 남용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는 고민도 피력했다.
“자정노력 신뢰 없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민간 영역에 있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법 적용 여부였다. 헌재의 대답은 “법조항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론·사학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취재 관행과 접대문화의 개선, 의식 개혁이 뒤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과도기적인 사실상의 우려에 불과하다”고 했다.
헌재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에게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교육계와 언론계에서 부패·비리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게 현실이며, 국민 인식에 비춰볼 때도 자정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고 봤다. 언론인 등이 종래 받아오던 금품과 향응을 받지 못하게 되겠지만, 이런 불이익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권익의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헌재는 사회적으로 약자가 아닌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1회 100만원을 준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전체 민간 영역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만 포함된 것을 두고도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라며 “입법자의 자의적 차별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재판관 전원 “‘부정청탁’ 명확”
부정청탁 및 예외에 해당하는 행위 등의 명확성 문제도 이슈였다. 청구인 측은 법률 제5조 1항에서 서술된 부정청탁 행위, 2항에 서술된 예외 행위 등이 모호하다는 입장이었다. ‘일반 국민이 어떠한 행위가 부정청탁 또는 예외에 해당되는지 임의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이며, 헌법상 형벌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헌재는 재판관 9명 전원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헌재는 일단 ‘부정청탁’ ‘사회상규’라는 용어는 형법 등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입법 과정에서 14개 분야의 부정청탁 행위 유형이 구체적으로 세분화됐다는 근거도 들었다. 입법 배경, 취지 등을 고려한 법관의 보충적 해석으로 충분히 그 의미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통령령 규정 ‘가액 하한선’ 논란
비록 합헌 결정이 나왔지만 제8조 3항이 ‘금품 등 수수 금지행위의 가액 하한선’ 등을 정의하는 형식에 있어서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크게 나뉜 편이었다. 법에 직접 명시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이라고 서술한 데 대해 일부 재판관은 “대통령령에 규정될 가액이 제8조 제1항이나 제2항의 기준(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매 회계연도 300만원)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정해질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수 재판관은 “1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액수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김영란법의 입법 목적과 관련 조항들을 유기적으로 종합해 보면 대통령령에 규정될 액수가 예측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다. ‘사교’ ‘의례’ ‘선물’ 등의 명확성 원칙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었지만 다수 재판관은 “사전적으로 그 의미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들”이라고 했다.
“배우자가 받으면 본인이 받은 것”
‘연좌제’라는 과격한 반응까지 나왔던 제9조 1항에 대해서도 헌재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배우자의 위법한 행위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비로소 처벌하는 것을 두고 연좌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헌재는 공직자 등의 배우자가 부정한 금품을 받은 행위를 사실상 본인이 받은 것과 같다고 인식했다. 결국 배우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시도되는 부정한 영향력을 차단한다는 데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헌재는 공개변론 과정에서 제기된 ‘과도한 부담’도 아니라고 봤다.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만 신고의무가 생긴다는 얘기다. 종래에는 배우자의 비위를 인지하고서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받지 않겠느냐는 비판도 컸지만, 헌재는 “달리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상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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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위축보다 금품·향응 해악 더 크다”
입력 2016-07-28 18:11 수정 2016-07-29 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