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부처 “시행령 고쳐달라” 요구… 정부서도 혼선

입력 2016-07-29 04:16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28일 농축산연합회 회원이 김영란법의 선물 한도인 5만원어치가 포장된 한우 선물세트 상자를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합법으로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농어민, 소상공인 등이 반발하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도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은 즉각 이른바 3·5·10시행령(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제한)을 고쳐야 한다며 공동으로 법제처에 조정을 요구했다. 시행령을 만든 국민권익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3·5·10시행령, 정부도 혼란

헌재 판결 직후 정부세종청사에서는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이 긴급히 기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일단 농축산물 수급 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농축산업계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계측하는 등 법 시행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TF에는 지방자치단체·농협·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축산물품질평가원·관련 협회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해수부·중소기업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법제처에 시행령의 조정을 공식 요청했다. 이들 부처는 식사비는 5만원, 선물은 과일 기준 10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에 화환용 비용 10만원을 추가해 20만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정책관은 “농축산업과 외식산업 담당 부서로서 김영란법의 취지를 저해하지 않는 차원에서 합리적인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관계부처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을 두고 정부 내에서 반대 의견이 공식 제기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미 입법예고 기간까지 거친 법을 시행해야 할 정부 내에서 혼선이 불거진 셈이다. 그만큼 농축산 농가와 수산업계, 음식점 등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농축수산업계 거센 반발

농축산농가는 지난주 법 시행에 반대해 서울 여의도에서 상경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축산지역 이장은 “한우 소비가 줄어도 막상 식당 가격은 안 내려가고 산지 가격만 더 떨어질 것”이라며 “오래 보관하는 것도 아닌 농축수산물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기준대로 법이 시행될 경우 한우와 과일 등 농축수산물 선물 수요는 연간 1조1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가량 감소하고, 음식점 매출은 3조∼4조2000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추정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 영향으로 관련업계 고용이 최대 5만9000명 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화원업계도 초비상이다. 문상섭 한국화원협회장은 “화훼농가 수익의 85%가 경조사에서 나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엄청난 타격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1400여 회원사들이 전업을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정책관은 “우선 법제처에 법안 심사과정이 있는 만큼 관계부처의 의견을 적극 제시하고 여기서 안 되면 이후 국무조정실 등을 통한 조정 등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혼란 최소화해야”

재계는 헌재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한상의는 헌재 결정 직후 “입법 취지의 효과적 달성과 도입 충격 최소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시킬 방안을 고민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상의는 주무부처인 권익위와 함께 기업들을 상대로 한 사례 중심의 교육을 준비 중이다.

삼성과 CJ는 기존 법을 중심으로 내부 가이드라인을 이미 작성했고, LG SK 등도 내부 지침 작성에 착수했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향후 홍보 방식에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은 하는데,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회사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운 상황”라며 “자칫 시범 케이스로 걸릴 수 있어 법 시행 이후 일정 등도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업계는 심란하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 삶의 터전을 담보로 해서 제도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정치권과 행정부가 민생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 절반이 창업 5년 안에 망하는 최악의 내수 상황에서 김영란법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선물이나 접대에 쓰이던 중소기업 물품이 상대적으로 값싼 대기업의 공산품이나 중국산 제품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다.

유통업계도 비상이다. 선물 가격이 5만원으로 제한돼 대목으로 불리는 명절 매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은 올 추석 이후이지만 기업들이 미리 액수를 줄일 것으로 예상했다. 백화점의 경우 명절 선물세트 매출에서 5만원 미만 세트 비중은 5%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고가 선물 수요가 많았다.

산업·경제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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