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여검사’가 도화선… ‘세월호 관피아’로 급물살

입력 2016-07-29 04:14

헌법재판소가 28일 합헌 결정을 내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태동은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수수한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도록 하는 내용의 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확한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었는데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추진해 온 법안이어서 김영란법으로 불렸다.

권익위의 초안은 대가성이 확인돼야 처벌하는 형법의 뇌물죄보다 강력한 규정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논란의 초점은 ‘과잉 입법’ 여부에 맞춰졌다. 실제 법무부의 반대 의견에 권익위가 형사처벌을 과태료 부과로 낮추려고 하자 당장 원안에서 후퇴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정부는 조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 11개월 만인 2013년 7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로 공을 넘겼다. 김영란법이 입법예고까지 오는 데만도 1년이 넘게 걸렸다. 김 위원장이 이 법안을 국무회의에 처음 보고한 건 2011년 6월이었다. 법안의 취지는 법조계 관행으로 자리잡은 ‘스폰서’와 ‘떡값’을 근절하자는 것이었다. 내연관계에 있던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의 대가로 벤츠 승용차를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된 여검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무죄의 근거가 벤츠를 받은 시점과 사건 청탁 시점이 달라 대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국회로 넘어온 김영란법은 2014년 5월이 돼서야 처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다. 심사에 불을 댕긴 건 그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였다. 관피아를 척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둘러싼 이견 탓에 임시국회 처리는 무산됐다. 이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로 치달으면서 또다시 표류했다.

정무위가 지난해 1월 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종사자를 포함시키면서 김영란법 논란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법의 적용을 받게 돼 있는 공립학교와 한국방송공사·한국교육방송공사 등과의 형평성 때문이었다. 김영란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기득권 옹호라는 프레임에 막혔다. 정무위는 여론에 쫓겨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제외하고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만 먼저 입법하기로 했다. 당초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수수 금지, 이해충돌 방지 등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김영란법은 정무위와 법사위를 거쳐 지난해 3월 본회의에서 재석 247명 중 찬성 228명, 반대 4명, 기권 15명으로 통과됐다. 새누리당 권성동 김용남 김종훈 안홍준 의원이 반대했다. 정의화 전 의장은 “이 법은 우리 사회를 맑고 투명한 선진사회로 바짝 다가서게 할 분기점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과잉 입법이라는 우려도 있기 때문에 법 시행 이전에 철저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회 통과 이후엔 시행령을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권익위가 ‘식사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자 농축수산업계를 중심으로 시행령 수정 및 법 개정 여론이 일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헌재는 김영란법과 관련한 4건의 헌법소원을 병합 심리해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고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