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군대 가서 책을 만난다고?

입력 2016-07-28 17:55

대한민국은 젊은 남자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세계 몇 안 되는 국가에 속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신문에서도 장병들 얘기를 발견하기 어렵다. 국방·안보 이슈가 들끓는 나라지만 군인들의 생활을 둘러싼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군대 얘기를 꺼내보는 까닭은 얼마 전에 읽은 ‘전쟁터로 간 책들’(책과함께) 때문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이 펼친 사상 최대 규모의 독서 프로젝트였던 진중문고 사업을 조명하면서, 책과 군인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탐구한다. 미국 정부는 출판계와 합심해 1억2000권 넘는 책을 전선에 보급했다. 지금은 대중화된 페이퍼백과 문고판이 이때 만들어졌다. ‘위대한 캣츠비’가 진중문고로 발간돼 군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 잊혀졌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특히 인상적인 건 진중문고 사업의 유산이다. 진중문고는 신문과 만화 말고는 아무것도 읽지 않던 수백만명의 군인에게 독서 습관을 심어주었다. 군인들은 참전 당시에는 없었던 독서 취미를 가지고 귀국했고, 제대 후엔 독서 대중으로 편입됐다.

대한민국 군대에도 60만명의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이 군 복무 기간 책을 읽고 독서 습관과 독서 취미를 가지게 되고 제대 후 독서 대중으로 형성된다면 어떨까.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걱정이 태산인 출판계에서 무엇보다 반길 일이 될 것 같다. 군대라는 거대한 독서시장이 새로 열리는 것이고, 출판을 떠받쳐줄 젊은 독자들을 대거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온전히 책 읽을 시간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입시경쟁을 통과해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 취업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알바도 해야 한다.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길을 세우기 위한 독서의 시간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군 복무 기간이 책 읽는 시간이 된다면 어떨까.

기억을 떠올려보면 20여년 전인 1990년대 초 군대에는 읽을거리 자체가 지독하게 부족했다. 내무반 전체에서 책이라고는 조악한 문고본 십여 권이 전부였다. 복무기간은 지금보다 한참 길었다. 몸도 마음도 왕성했던 젊은이에게 시간은 지루할 정도로 넘쳐났지만 독서의 시간은 없었다. 공을 차거나 TV를 보거나 후임들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군대는 어떨까 궁금해서 올 초 제대했다는 경희대 학생 두 명에게 물어봤다. 한 학생은 공군으로 24개월 복무하는 동안 독서노트를 썼는데, 세 보니 70권이 넘더라고 했다. 다른 학생은 해병대에서 21개월 근무하며 읽은 책이 60권쯤은 될 거라며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군대 안에서 읽었다고 말했다. 둘의 얘기에 따르면 군대는 장병들의 독서 시간을 보장하고 있으며, 책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신병도 자유시간에 책을 읽는다니 변하긴 많이 변한 모양이다.

그러나 병사들에게 좋은 책들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전체 국방예산 중 도서 구입과 도서관 운영에 쓰는 돈은 0.02%에 불과하다. 병영도서관 중 상당수가 장서량 500권 미만이고, 그마저 민간 기증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사회가 군대 안의 젊은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옷이나 음식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좋은 책도 공급해야 한다. 군대가 젊은이들이 책을 만나는 시간, 책을 온전히 읽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김남중 문화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