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깔리는 저녁나절이었지만 바람은 조금도 선선하지 않았다. 진종일 달궈진 지열 탓인지 기도회를 준비하는 청년들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27일 찾은 이곳은 서울 독립문사거리에서 무악재로 향하는 대로변에 있는 허름한 천막이었다. 천막은 신학생들이 주축이 돼 꾸려진 ‘옥바라지선교센터’의 활동 거점. 신학생들은 강제 철거 위기에 놓인 이 일대의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려고 지난 5월부터 매주 수요일 기도회를 열고 있다.
기도회가 예정된 오후 7시30분이 되자 참가자들은 통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을 시작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기도자로 나선 김지원 전도사는 “무더운 여름날 또다시 이곳에 모였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소서”라며 기도를 시작했다.
“저희는 지금 슬피 울고 있습니다. 이곳은 결코 권력자의 땅이 아닙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이 천막 안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학생들의 기도회가 시작된 건 지난 5월 11일이었다. 감리교신학대와 장로회신학대 학생 50여명이 모여 옥바라지 골목 보존을 촉구하는 예배를 드렸다. 엿새 뒤인 17일 강제철거가 시작되자 이들은 이튿날 천막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한신대와 총신대 학생들도 차례로 합류했다.
옥바라지 골목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애환이 서린 장소다. 과거 이 골목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었다. 독립투사를 상대로 모진 고문이 자행된 곳이다. 옥바라지 골목에서 재소자들의 안부가 궁금해 소리를 지르면 형무소에서 다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옥바라지 골목에 머물며 옥바라지를 했다. 골목은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한국교회 애국선열들의 정신도 깃들어 있다. 기독사상가 김교신 함석헌 등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사달이 났다. 이주를 원하지 않는 주민을 강제 퇴거시키려다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골목에 살던 118세대 중 현재까지 남아 보금자리를 지키는 가구는 2세대. 철거 작업은 일시 중단된 상태다.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신학생은 10여명밖에 안 됐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데다 여름성경학교 기간까지 겹친 탓에 참석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신학생들이 옥바라지 골목 지키기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감신대 4학년생인 이종권씨는 “개발 논리에 따라 철거되는 마을이 한두 곳이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역사와 공동체가 살아있는 이런 마을을 지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답했다.
“마을이 허물어진다는 건 오랫동안 유지된 공동체가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마을 공동체를 섬기는 교회들도 큰 위기를 맞을 겁니다. 대형교회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학생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글·사진=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역사 새겨진 마을 허물어지는데 크리스천으로 가만히 볼 수 없죠”
입력 2016-07-2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