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미국은 왜 강한지를 보여줬다. 버니 샌더스는 경선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절차적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보여줬고, 힐러리 클린턴은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승자였고, 이것은 미국의 힘이었다.
샌더스는 불공정 경선에 분노한 자신의 지지자들이 야유를 보내는데도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인정하고 화끈하게 지지했다. 당내 경선이 치러질 때마다 탈당과 분당이 예사로 일어나는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는 당이 분열의 위기에 처한 결정적인 순간에 통합을 택했다. 경선을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전국위원회 간부들이 자신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해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는 데도 경선 무효를 주장하지 않았다. 클린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도 않았다.
그는 전당대회 첫날인 25일(현지시간) 단상에 올라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클린턴과 나는 몇 가지 이슈에서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경선을 치렀다. 경선결과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해 클린턴의 승리를 쿨하게 인정했다.
전당대회 이튿날에도 그는 변함이 없었다. 샌더스 의원은 대의원들이 지역별 경선결과를 보고하는 순서에 자신이 직접 나섰다.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의 경선결과를 전국위원회에 보고한 뒤 또다시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는 미소 띤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힐러리 클린턴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지명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경선 라이벌이 상대의 승리를 확인하고 대선후보로 제안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지면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샌더스 의원은 자신을 지지한 대의원들과의 조찬 모임에서 “나에게 야유를 하는 것은 쉽지만 여러분이 투표를 하지 않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아이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거냐”며 클린턴에 대한 지지를 거듭 당부했다.
여전히 전당대회장 안팎에서 샌더스 지지자들의 항의시위가 그치지 않았지만, 샌더스가 불공정 경선을 빌미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것이다. 샌더스는 경선에서 1300만표를 받아 일반대의원 45%의 지지를 확보했다. 트럼프와의 승부가 박빙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샌더스 지지자들의 이탈표는 클린턴과 민주당에 심각한 타격을 안길 수 있다.
샌더스 의원은 비록 경선에서 졌지만 민주당의 정강정책에 자신의 공약을 대거 포함시켰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고, 소득 83%의 가정은 등록금 부담 없이 자녀를 공립대학에 진학시킬 수 있도록 했다. 임금격차 해소와 건강보험개혁 추진 등 역대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정강정책이 만들어진 건 샌더스의 공이었다.
하지만 이날 서울에서 들려온 뉴스는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다. 경제는 갈수록 힘들고 서민들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도 당권을 놓고 여당에선 친박·비박이 비겁하기 짝이 없는 수준 이하의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친노·비노를 따지며 소모적 정쟁을 이어가고 있다. 오로지 이해관계에 따라 뭉쳤다 헤어지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서울의 패거리 정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에게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본 민주주의의 가치, 희망, 통합을 기대한다는 것은 요원한 것인가.
필라델피아=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현장기자-전석운] 샌더스를 보면서 여의도를 생각한다
입력 2016-07-28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