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여성성을 강화하자

입력 2016-07-27 18:32 수정 2016-07-28 09:26

신영자 박선숙 김수민 서영교 문강분….

지난 주말 만난 중학교 동창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여자 망신은 똑똑한 여자들이 다 시킨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남자들의 행태가 ‘천보(千步)’라면 이들이 저질렀거나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일들은 ‘오십보(五十步)’ 수준이 아닐까. ‘백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오십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도망갔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오십보백보)’는 게 맹자님 말씀이기는 하지만.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들의 편의를 봐준 대신 뒷돈을 챙기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에서 일감몰아주기부터 무기중개 브로커 특혜까지 갖가지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았던 남상태 전 사장에 비하면 양반이 아닐까.

여성 최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과 20대 최연소 의원인 김수민 의원은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주에게 자동차와 주식을 받아 꿀꺽하고 처남 회사에 일감을 받는 대신 탈세의혹 내사를 종결시킨 진경준 검사장과 견줄 바가 못 된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는 국민의당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는 참는 게 미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성희롱 예방교육을 했다. 국민을 개·돼지로 만든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에 비한다면 애교 수준이다.

천보에 비하면 오십보는 마음이 바뀌어 병영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거리라고 우겨볼까도 싶지만 역시 오십보백보, 맹자님 말씀이 맞는다. 비리와 잘못된 인식에는 경중이 있을 수 없다. 뿐만이 아니다. 똑똑한 여성은 대중에게 ‘여성도 별수 없다’는 인식까지 심어주었으니 가중처벌감(?)이다. 1994년 8월 말, 기자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들떴었다. 진보와 보수의 맏언니로 평행선을 걸어왔던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가 손을 맞잡았다. 이 두 단체를 중심으로 56개 여성단체가 ‘할당제 도입을 위한 여성연대’를 창립하는 현장을 취재하면서였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열심히 뛰는 그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여자들이 무슨 정치야!” 눈살을 찌푸리는 유권자들에게 여성 운동가들은 ‘남녀평등론’을 내세우는 대신 ‘여성성(女性性)’을 강조했다. “여성들은 공정하고 청렴해서 지금의 부패한 정치판을 바꾸고, 국민과 소통해 잘사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흙탕물이 넘실대고 의원들의 귀는 선거 때만 잠시 열렸다 닫힌다. 그런 곳을 정화하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니 유권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표심까지 움직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은 그나마 여성이라면 당연히 여성성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통했던 덕분이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공정과 청렴, 소통과 화합, 유연한 사고 같은 여성성을 찾아볼 수 없는 여성들을 매일 뉴스에서 보고 있는 요즘이라면 어림없다. 불통의 아이콘이 누구인가! 여성은 여성성을 타고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착각은 똑똑한 여성들의 맹활약(?)으로 이제 사라지고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새천년은 여성이 열어가는 ‘핑크시대(pinkera)’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성이 여성성을 갖췄다는 의미가 전제된 예측이다. 21세기를 이끌어갈 리더의 자질로 꼽히는 여성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들에게 더욱 절실하다.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