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고 국제 감각이 있다’는 외교가의 평판은 틀리지 않았다. 이용호 신임 북한 외무상은 2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뒤 직접 기자들 앞에 나서 회견을 자청했다. 지난해 북측 대표였던 이수용 현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외무상은 자기 앞에 몰려든 수십명의 기자들을 바라보고 “많이 기다리게 해서 안 됐다”고 운을 뗐다. 모두발언을 끝낸 뒤 바로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졌다. 일부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지만 회피하지 않고 여유롭게 답했다. 이 외무상은 모두 7개의 질문을 받았으며 10여분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외무상은 그동안 취재진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어 왔다.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네”라고 대답한 게 전부였다. 그는 지난 25일 아세안 의장국 라오스 측이 주최한 갈라 디너에서 각국 외교장관들이 무대 앞에 나와 춤을 추는 가운데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양옆의 파키스탄과 파푸아뉴기니 외교장관과 잠시 대화를 나눈 것 외엔 식사에 주로 열중했다.
이 외무상은 24일부터 2박3일간 이어진 ARF 기간 내내 내외신 기자들의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남한과 일본 취재진의 취재 경쟁이 치열했다. 넘어져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경비원들은 취재진을 저지하고자 전기가 흐르는 곤봉을 위협적으로 휘두르기도 했다. 이 외무상의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일본 기자들이 더 좋은 자리를 얻고자 다투기도 했다.
ARF 회의장 앞에서 남측 기자들과 만난 북측 관계자는 “우리가 아세안에 가입해서부터 계속 이렇게…(ARF에 참석해 왔다)”면서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갈 때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이번엔 경찰들이 지켜줬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식당엔 갔었느냐’는 질문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답해 북측 대표단 또한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두 사람에 비하면 다른 나라 외교장관들은 ‘찬밥’ 신세였다. 지난 24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이 외무상이 탔던 비행기엔 스테판 디옹 캐나다 외무장관도 탔지만 그는 두 사람에 비해 아무 관심도 받지 못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주변에도 수행원과 경호원만 있었고, 미얀마의 ‘민주화 영웅’인 아웅산 수치 여사도 외교무대에선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비엔티안=조성은 기자
국제감각 탁월한 이용호… 취재진 시선 한몸에
입력 2016-07-27 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