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야유… 샌더스 “승복하자, 이것이 민주주의”

입력 2016-07-26 17:56 수정 2016-07-26 21:43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로 나섰다가 탈락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자가 25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 전당대회장에서 샌더스 이름이 적힌 흘래카드를 들고 울먹이고 있다. AP뉴시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자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양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으로 훔치며 샌더스를 바라보는 대의원도 있었다. 손에는 ‘버니가 우리의 미래’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샌더스가 “실망하는 여러분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엉엉 우는 지지자도 있었다.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함께해 자랑스럽다”며 지지를 호소하자 일부 지지자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지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전당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샌더스 지지자의 분노를 달래지 못한 민주당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25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시내 곳곳에는 샌더스 지지자 수천명의 항의시위가 이틀째 이어졌다.

샌더스가 직접 나섰지만 처음에는 실패했다. 전당대회 직전 지지자를 불러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클린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우∼” 하는 야유가 돌아왔다.

오후 4시 아이스하키경기장인 웰스파고센터에서 전당대회가 시작됐다. 전국위원회는 “샌더스와 지지자에게 깊은 사과(deep and sincere apology)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래도 샌더스를 연호하는 외침은 가라앉지 않았다. 전날 사퇴를 선언한 데비 와서먼 슐츠 전국위원장은 이들을 자극할까 두려워 대회장에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지적장애인 여성 아나스타시아 소모사가 연사로 나서 얼굴근육이 뒤틀리는데도 클린턴 지지를 호소하고, 팝스타 폴 사이먼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s)’를 열창한 뒤 긴장감은 조금씩 무뎌졌다.

이후 미셸 오바마 여사와 민주당 진보진영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지연설에 대의원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미셸은 “트럼프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적이 없지만 클린턴은 평생 아이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했다”며 “내 딸들과 이 땅의 모든 딸들을 위해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때 클린턴의 대항마였던 워런은 “클린턴이 당선돼야 건강보험 개혁과 임금격차 해소 같은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후 10시49분 샌더스가 무대에 올랐다. 지지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버니, 버니”를 외쳤다. 샌더스는 3분 동안 “생큐”만 연발하며 함성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샌더스는 “상위 1%와 거대기업의 이익이 아닌 99%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정치혁명은 중단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샌더스는 “클린턴은 몇 가지 이슈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경선을 치렀다.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지지자에게 ‘이제 그만 승복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자칫 분열과 대립으로 치달을 뻔했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하고 개막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필라델피아(펜실베이니아)=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