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0%대 분기 성장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부의 경제운용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를 방어하기 위해 상반기에 예산을 집중 투입한 이후 하반기 ‘재정 절벽’을 겪고, 연간 성장률 목표에 급급해 단기 부양책 위주의 정책을 펴는 패턴으로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3분기 연속 0%대 성장
한국은행은 26일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에서 2분기 경제성장률이 0.7%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0.7%), 올해 1분기(0.5%)에 이어 3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0%대 성장률이지만 이전과 다른 부분은 정부 지출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1분기에 1.3% 늘었던 정부 소비는 2분기 증가율이 0.2%로 급감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이 1분기에 몰리면서 2분기 정부 소비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지출은 경기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특히 지난해 2분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충격으로 성장률이 0.4%로 추락하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11조6000억원을 편성했다. 이후 정부 소비는 1%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고, 하반기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소비진작책의 영향으로 지난해 3·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도 1%를 넘었다.
문제는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 하반기 재정여력 보강 차원의 추경 편성이 반복되는 와중에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저성장은 일시적인 수요 위축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능력이 떨어진 것”이라며 “재정지출 확대로 성장을 끌어올리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균형 재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정쩡한 부양책이 계속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추경도 경기부양 예산으로는 역대 추경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다”며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경기부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계 소득창출력 높여야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2011년 1분기(-0.3%) 이후 5년여 만에 전기 대비 마이너스(-0.4%) 성장했다. 실질 GDI는 국내에서 생산된 최종생산물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실질 GDP와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손익을 합산해 계산한다. 국제유가 상승 등 무역조건이 나빠져 수입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는 실질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김영태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유가가 오르면 국민이 살 수 있는 기름 양이 줄어드는 등 실질구매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GDI의 감소를 국제유가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서 가계나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소득창출 여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그동안 가계부문 소득이 줄어든 것이 국내총소득 증가율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제는 기업부문 소득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가계 소득 감소와 기업의 막대한 현금보유라는 불균형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기업들도 현금창출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등 가계를 중심으로 소득을 늘려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8월 수출 반등에 총력
정부는 경기반등의 동력 확보 차원에서 하반기 수출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3차 민관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에서 “수출 마이너스 행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7월은 조업일수 감소, 자동차 업계 파업 등으로 일시적으로 수출 감소 폭이 커지겠지만 8월은 수출 증가세 전환의 1차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단기 수출효과가 큰 무역금융에 집중할 계획이다. 하반기 신흥국 진출기업에 대한 정부의 무역금융 지원금액을 상반기(5조7000억원)보다 배 이상 늘린 14조3000억원으로 잡았다. 또 6조40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조달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17년까지 1000개 조달전문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단기부양 위주 정책, 더 이상 ‘약발’ 안 먹힌다
입력 2016-07-27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