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외 도피 14년 만에 잡힌 브로커, 공소시효 만료?

입력 2016-07-27 04:18
“청와대와 수사기관을 상대로 로비를 해 주겠다”며 형사사건 피의자로부터 수천만원을 챙겨 필리핀으로 달아났던 법조브로커가 14년 만에 검찰에 체포·구속됐다. 이 브로커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강지식)는 허위 매출세금계산서로 부가가치세 44억여원을 공제받아 경찰 수사를 받던 윤모씨로부터 수사 무마 명목의 로비자금 8000만원을 받은 뒤 해외 도피했던 유모(57)씨를 14년 만에 검거해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유씨는 2002년 8월 다른 브로커 2명과 함께 윤씨에게 “수사기관에 청탁해 이미 구속된 동생을 석방시켜 주고, 당신도 구속되지 않게 해 주겠다”며 8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변호사법위반)다. 이들은 윤씨에게 “청와대, 법무부, 국정원 고위간부들은 물론 판사 검사들에게도 로비를 하겠다”며 돈을 받아냈다.

이들에게는 이미 유사한 수법의 사기로 유죄를 인정받은 전력이 있었다. 돈만 뜯긴 윤씨가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지만, 유씨는 그에 앞선 2002년 11월 필리핀으로 출국한 상태였다. 유씨의 공범 2명만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04년 10월 징역 10개월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궁박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사건 무마 명목으로 금원을 교부받아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지난주에 유씨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자의는 아니었다. 유씨의 불법체류를 적발한 필리핀 사법당국이 강제출국 조치를 했다. 유씨는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선 순간 검찰에 체포됐다. 필리핀 사법당국의 통보를 받은 법무부가 유씨의 신병을 확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4년이 흘렀지만 검찰은 유씨의 공소시효(5년)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고 봤다. 형사소송법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씨는 처벌을 피하려 출국했던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유씨가 공소시효 기간 중 공범들로부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귀띔을 받은 정황까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용택 양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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