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의 빙상장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피겨여왕' 김연아가 2년 전 석연찮은 판정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이곳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국 청년들이 이곳에서 열린 '제9회 월드콰이어게임' 한 종목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월드콰이어게임은 합창올림픽으로 통하는 세계적 합창경연대회다. 우리나라 청년 20명으로 구성된 '하모나이즈'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곁들여야 하는 '쇼 콰이어(Show Choir)' 부문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수상이 확정되자 단원들은 소리를 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무대로 뛰어올라갔다.
하모나이즈의 리더이자 이 팀의 소속사 ‘두팔로’를 이끄는 수장은 오장석(32) 대표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오 대표는 서울 평광교회(조성욱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 최근 서울 양천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아직도 그랑프리 수상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 정상에 선 이색 합창단
2013년 결성된 하모나이즈는 래퍼에 댄서까지 갖춘 이색적인 합창단이다. 이들이 월드콰이어게임 출전을 결심한 건 지난 1월이었다. 대회에 참가해 혹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해외 진출도 꾀할 수 있어서다.
서류 심사를 통과해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한 달 뒤였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1억원 안팎의 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팀원들은 커피숍에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경비를 마련했다. 그래도 부족한 비용은 대출을 받았다.
“‘쇼 콰이어’에 한국팀이 참가한 건 저희가 처음이었어요. 대회를 앞두고 일주일에 4∼5회씩, 모일 때마다 6시간 이상 연습했어요. 하지만 우승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죠(웃음).”
‘쇼 콰이어’는 월드콰이어게임 29개 종목 중 하나로 미국과 유럽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띠는 부문이다. 참가팀은 기존 대중음악을 자신만의 색깔로 편곡해 개성 있는 무대를 연출해야 한다. 하모나이즈는 그룹 god의 ‘촛불하나’, 영국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리햅(Rehab)’ 등을 선보였다.
하모나이즈는 퍼포먼스를 빼고 보컬만으로 실력을 겨루는 ‘팝 앙상블(Pop Ensemble)’ 부문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오 대표는 “수상 이후 해외 각지에서 공연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하모나이즈 팀원이 전부 크리스천인 건 아니에요. 하지만 ‘크리스천 마인드’로 회사를 운영하는 두팔로 소속팀인 만큼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전개해나갈 겁니다.”
“음악은 세계 유일의 공용어”
오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뮤지션을 꿈꿨다. 안양예고에 다니던 10대 시절에는 한 대형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도 했다.
“5인조 아이돌 그룹의 막내였어요.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데뷔가 무산됐는데 아쉬움은 전혀 없습니다. 아이돌 음악은 제가 하고 싶던 음악이 아니었으니까요.”
10대 시절 연습생 생활을 하며 들여다본 연예계의 그늘은 음산했다. 자신보다 앞서 데뷔한 친구들이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천의 생각이 담긴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기독교 계통 학교인 백석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4학년이던 2008년에는 MBC 대학가요제에 ‘파티캣츠’라는 팀으로 출전해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뮤지션의 사회적 역할, 크리스천 음악인의 사명을 고민했다. 제대로 된 음악기획사를 차리기로 결심했고, 2014년 ‘두팔로’를 설립했다. 회사명에는 두 팔로 세상을 보듬는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오 대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두팔로가 크리스천 음악인들에게 플랫폼이 됐으면 좋겠어요. 두팔로를 통해 크리스천 뮤지션들이 연합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거죠. 음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언어입니다. 음악을 통해 꽁꽁 얼어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오장석 대표 "크리스천 뮤지션들 연합해 세상에 선한 영향을"
입력 2016-07-26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