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 채프먼… ‘염소의 저주’ 풀어줘!

입력 2016-07-27 00:16
아롤디스 채프먼이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던 지난 3월 18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원정경기에서 9회말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채프먼은 26일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AP뉴시스
2003년 10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 시카고 컵스는 58년 동안 오르지 못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까지 아웃카운트 5개만 남기고 있었다.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에 3승2패로 앞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에서 컵스는 8회초 1사까지 3-0으로 앞서 있었다.

타자 5명만 돌려세우면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내셔널리그에서 우승하고 월드시리즈 진출이었다. 구단주 단장 감독 코치 선수들은 물론, 4만명의 관중까지 희열과 긴장에 휩싸여 축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말린스 타자 루이스 카스티요의 파울플라이 타구를 컵스 외야수 모제스 알루가 따라가는 와중에 스티브 바트먼이란 관중이 손을 쭉 뻗었다. 알루의 글러브가 아닌 관중석 바닥에 볼이 굴렀고, 리글리필드는 찬물을 뿌린 것처럼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관중을 향한 야유가 터졌다.

그 다음 컵스는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거짓말처럼 8실점을 하고 역전패했고, 다음날 7차전에서도 6대 9로 졌다. 그렇게 월드시리즈의 문턱에서 또 한 번 미끄러졌다. 미국 언론들은 “그 순간 ‘염소의 저주’가 시카고 선수들의 몸을 꽉 휘어잡았다”고 대서특필했다.

컵스는 염소의 저주가 걸린 1945년을 끝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08년. 그 이후 창단한 신생팀을 제외하고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가장 오래 우승하지 못한 팀이다.

1989년 개막전에서 염소의 저주를 낳은 빌리 시아니스의 조카와 염소의 자손을 리글리필드로 초청했지만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1918년부터 우승하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징크스 ‘밤비노의 저주’를 86년 만에 깨뜨린 테오 엡스타인 단장을 2011년 영입했지만,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컵스는 지난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에 4전 전패로 스윕을 당했다.

이런 컵스가 61년 만에 모든 저주와 불운을 깨뜨릴 기회를 잡았다.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탈환이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컵스는 26일 현재 59승38패(승률 0.602)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다. 30개 구단을 통틀어 6할대 승률을 쌓은 팀은 컵스가 유일하다.

엡스타인 단장은 컵스가 하위권을 맴돌았던 2014년부터 최고 유망주들을 육성했고, 검증된 투수를 과감하게 영입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일궜던 조 매든 감독에게 지난해부터 지휘봉을 맡기고 있고, 투수 존 레스터(10승4패 평균자책점 3.09)와 포수 미겔 몬테로를 영입해 가장 안정된 배터리를 완성했다.

공격적인 투자는 끝나지 않았다. 오는 8월 2일(한국시간) 마감되는 메이저리그의 여름 트레이드시장에서 최대어를 잡았다. 컵스는 이날 뉴욕 양키스에 선수 4명을 보내고 좌완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을 영입한 4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채프먼은 평균 시속 100.35마일(161.5㎞)의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다. 지난달 25일 미네소타 트윈스의 커트 스즈키에게 던진 시속 103.8마일(약 167㎞)짜리 포심패스트볼은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측정된 최대 구속이다. 시즌 성적은 3승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01다.

뒷문을 걸어 잠궈 상승세를 시즌 후반기로 이어가고 월드시리즈까지 정복하겠다는 컵스의 야심찬 계획은 채프먼을 영입하면서 실현단계에 돌입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