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소녀티를 벗은 ‘88둥이’ 김온아(28·SK 슈가글라이더즈)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오른 것은 8년 전이었다. 키 167cm에 몸무게 50kg. 몸싸움이 심한 핸드볼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조건이었다. 그러나 센터백 김온아는 한국 여자 핸드볼의 비밀병기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핸드볼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김오아는 팀 내 최다인 7골을 몰아쳤다. 한국은 김온아의 맹활약 덕분에 강호 러시아와 29대 29로 비기며 첫 고비를 잘 넘겨 동메달을 땄다. 그때의 막내 김온아는 이제 한국 대표팀의 기둥이 돼 세 번째 올림픽 무대에 오른다.
김온아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을 때 가장 기뻤다”며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감독님과 선배들의 지시만 따르면 됐다”며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앞서 두 차례 올림픽보다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는 마음이 남다르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온아는 2012 런던올림픽 때 부상 때문에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강호 스페인과의 조별예선 첫 경기 종료 2분 전 김온아는 상대 진영에서 패스를 받아 공격에 나서던 중 스텝이 꼬여 넘어졌다. 코트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들것에 실려 나갔다. 한국은 스페인을 31대 27로 꺾었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김온아는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경기를 조율하고 속공을 주도하던 ‘야전사령관’을 잃은 한국은 4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김온아는 그 부상으로 두 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늘 염려해 주고 힘이 되어 준 부모님 덕분에 김온아는 10개월 동안의 재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했다.
김온아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며 자신감을 충전했다. 그러나 유럽 강호들과의 대결은 쉽지 않다. 세계 랭킹 10위 한국은 리우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29위), 스웨덴(19위), 러시아(2위), 프랑스(9위), 네덜란드(14위)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한국은 B조 상위권으로 토너먼트에 올라가야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노르웨이 등 A조 강팀과 8강에서 만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경기는 강호 러시아와의 1차전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러시아 선수단에 대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여부를 각 종목별 국제연맹(IF)의 판단에 맡기기로 함에 따라 러시아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출전 여부가 상위 라운드 진출의 최대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한핸드볼협회 관계자는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 국제핸드볼연맹에서 공식 통보가 온 것은 없다. 이번 주 안으로 통보가 올 것 같다”며 “현재 분위기로선 러시아가 참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수선한 러시아를 잡고 약체 아르헨티나, 스웨덴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면 조 상위권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 유럽의 벽을 넘기 위해 한국은 이번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유럽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최근 세계 흐름을 보면 골키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임영철 감독은 ‘우생순 멤버’였던 베테랑 골키퍼 오영란(44·인천시청)을 불러들였다. 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라이트윙 우선희(38·삼척시청)도 발탁해 팀의 중심을 잡게 했다. 오영란은 5번째, 우선희는 3번째 올림픽에 출전한다.
김온아는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두 베테랑의 합류가 반갑기만 하다. 그는 “언니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팀에 구심점이 없었다”며 “갑자기 무너지거나 이기고 있더라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아 고전했다. 언니들이 오면서 구심점이 생겨 나의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기뻐했다.
‘임영철호’엔 유럽 선수 못지않은 파워와 스피드를 가진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 선수들이 고참 선수들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가 이번 올림픽의 중요한 과제다. 중견이 된 김온아가 선배들과 후배들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임 감독은 리우올림픽에서 김온아에게 공격 선봉을 맡길 예정이다. 그는 “김온아가 그동안 부상으로 세계대회에 나서지 못했는데 이번에 합류한 만큼 우리 대표팀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온아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며 “4년 전의 아쉬움을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로 털어내겠다”고 다짐했다. 부상을 극복하고 더욱 단단해진 김온아. 리우데자네이루에선 눈물의 우생순이 아니라 환희의 우생순을 꿈꾸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올림픽은 나의 운명-김온아] 핸드볼 대표팀 기둥 된 88둥이 “금빛 우생순 보라”
입력 2016-07-26 18:33 수정 2016-07-26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