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득은 경남 밀양의 명문(名門) 박 승지 집안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 재산을 물려받게 됐는데, 그 돈을 탐한 비부(婢夫·계집종의 남편) 주홍석이 만득을 죽이려고 불을 질렀다.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해조의 신소설 ‘탄금대’는 간신히 탈출한 만득이 이곳저곳 떠돌며 겪는 곡절을 그렸다. 그를 해치려던 이가 오히려 감복할 만큼 품성이 좋고, 결국 귀향해 재산을 되찾는 의지의 인물로 묘사됐다.
‘만득’은 이렇게 양반집 자제인 주인공에게 붙여주던 이름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 노비 이름 홍석은 지금도 이상하지 않은데, 만득의 이름값은 날로 떨어져서 1990년대 ‘만득이 인형’이 전국 문방구에 출시됐다. 고무풍선에 녹말반죽을 넣어 얼굴을 만든 거라 주물럭거리면 표정이 바뀌는 재미가 있었다.
2000년대에는 ‘만득이 핫도그’가 등장했다. 꼬치에 끼운 핫도그 겉면에 사각형 감자조각을 빼곡히 붙여 튀겨낸다. 노점 매출에 기여한 이 작명은 아마도 ‘만득이=촌놈=감자’의 연상 효과를 노렸을 테다. 반가(班家)의 이름은 100년 만에 촌놈의 대명사가 됐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던가. 만득이 인형은 요즘 라텍스로 재질을 바꿔 애완견 장난감으로 팔린다.
충북 청주에서 40대 지적장애인이 19년간 돈 한 푼 못 받고 ‘축사노예’로 살았다. 농장주는 그를 축사의 악취 나는 쪽방에 재우며 소똥 치우는 일을 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말이 어눌한 그를 만득이라 불렀다. 강아지에게 던져주며 “만득이 물어와” 하는 그 이름으로 19년을 사는 동안 누구도 그의 노예 같은 삶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상위 1%를 꿈꾼 공무원은 99% 국민을 개·돼지라 했는데 농장주는 이 장애인을 정말 개·돼지로 여긴 건 아닌지, 주민들은 그를 만득이라 부르며 ‘나는 저치와 다르다’는 우월감을 느꼈던 건 아닌지, 99%인 우리 무의식에도 혹시 저 공무원 같은 선민의식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만득이란 이름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태원준 논설위원
[한마당-태원준] 만득이
입력 2016-07-26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