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성환] 100년 묵은 신용평가 체계

입력 2016-07-26 18:25

신용평가산업은 투자자에게 신용평가 정보를 제공하지만 신용평가 수수료는 평가를 받는 기관이 지불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신용평가사는 투자자 보호라는 신용평가의 궁극적 목표와 평가를 받는 기관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취할 수 있는 수익 제고라는 경영 목표 간의 이해상충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신용평가사의 부실 신용평가로 인한 투자자 피해 사례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2013년 국내 동양그룹 사태, 최근의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다.

신용평가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투자자가 이용료를 지불하는 방안, 채권 발행이나 유통 시 수수료를 부과해 조성한 기금으로 신용평가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안,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을 보다 엄격히 시행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신용평가사가 시장에서 도태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평가사들이 스스로 혁신하고 차별화된 신용평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신용평가사의 상황은 어떤가. 우선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등급 체계는 사실상 동일하고 평가등급 결과도 거의 같다. 이는 미국 등 선진 금융시장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신용평가사가 제공하는 신용평가 정보를 차별적으로 평가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현재 신용평가사들이 사용하는 AAA등급부터 D등급까지의 신용등급 체계는 1909년 무디스 신용평가사가 미국에서 설립된 이래 100여년 동안이나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그렇다면 금융시장도 마찬가지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금융시장은 컴퓨터 및 IT 기술 발전을 수용하며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금융시장에는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고, 이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도 넘쳐나며, 분석된 결과는 실시간 투자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100년 전에 사용했던 등급체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니…. 그것도 모든 신용평가사들이 동일하게 말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고객인 투자자의 만족을 위해 신용평가 체계를 컴퓨터 및 IT 인프라를 이용, 혁신적으로 차별화하는 신용평가사가 당연히 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노력은 전혀 목격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엄청난 데이터 및 기술 인프라를 적극 사용할 경우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분화되고 다양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적시에 반영해주는 신용평가 체계를 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신용평가 정보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실시간 전달될 수 있다. 그렇게 신용평가사들이 투자자들에게 차별화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해야 투자자들이 신용평가사에 대한 차별적 평가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신용평가업에 한해서는 미국 등 선진 시장이 바람직한 벤치마크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신용평가업의 문제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신용평가업의 투자자 보호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신용평가사가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신용평가 서비스를 투자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정책 당국 및 감독기관이 적극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