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년 만에 잠 깬 ‘보물선’이 통째로 열렸다

입력 2016-07-26 17:47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련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이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공개됐다. 관람객들이 14세기 최대 중국 무역선이 바다 밑에 좌초된 상태로 있던 모습을 재현한 전시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신안해저선 발굴의 단초가 됐던 중국 원나라 때의 청자 꽃병(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렸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그물을 둘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배에서 나온 각종 유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 백자 접시.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압도적인 전시 물량이다. 신안해저선에 실려 있던 물품 2만4000여점 중 2만여점이 나왔다. 함께 발굴됐던 동전 28t중 1t가량이 뭉치 째 쌓여져 있다. 승객들이 심심파적으로 했던 장기판과 바둑알, 칼과 도마까지 전시됐다.

신안해저선이 발굴 40년 만에 처음으로 거의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전에서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25일 언론에 공개된 이 전시에는 신임 이영훈 관장의 철학이 배어 있다. 유물이 그저 보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호흡했던 꿈과 한숨, 삶의 산물이라는 시대의 맥락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원이 중국을 지배하던 1323년. 도자기와 금속기, 향신료, 고급 목재였던 자단목까지 최고급 무역품을 싣고 일본으로 가던 거대한 목선이 고려의 남쪽 바다에서 좌초됐다. 650년 바다 밑 갯벌에 잠들어 있던, 중량 200t급의 가히 14세기 최대 무역선이었던 이 배의 존재는 아주 우연히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975년 9월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 6점에서 비롯됐다. 어부는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도자기들을 보여줬고, 동생은 이듬해인 1976년 청자꽃병 한 점을 신안군청에 신고했다. 도자기는 놀랍게도 원나라 때 존재했던 용천요 가마에서 만든 중국 청자였다.

신안해저선 유물 발굴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 해저 유물 발굴의 효시다. 신안해저선 유물은 이후 몇 차례 전시가 이뤄졌다. 그러나 모든 전시가 그러하듯 맥락을 잃고 당시의 사람 냄새가 아닌 돈 냄새가 나는 명품처럼 전시됐다. 그동안 대중에게 보여준 것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이번 전시엔 그 배에 실렸던 ‘화물’을 거의 통째 가져왔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있다. 전시의 첫 머리는 초등학교 교사가 신고했던 청자 꽃병이 차지했다. 그것이 걸려 올라온 그물을 함께 보여줘 호기심을 유도한다.

1부 ‘문화기호 읽기’에서는 신안선 유물을 당시 한중일 삼국의 상류층이 공유했던 문화 교류사의 측면에서 유물을 해석한다. 그 때 중국에서는 복고풍이 대유행했다. 하·상·주 시대에 제사를 지내며 쓰던 용기를 모방해 도자기,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용도는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꽃을 꽂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국 상류층의 문화는 일본에서 모방돼 값나가는 무역품이 됐다. 고려에도 전파됐음을 당시의 기록, 비슷한 형태의 도자기 등으로 보여준다. 2부 ‘14세기 최대 무역선’에서는 저울, 목간, 화폐로 쓰였던 은덩이 등을 통해 당시의 교역 활동과 배에 탔을 70여명 가량의 선원과 승객들의 선상생활도 시각화했다.

하이라이트는 3부 ‘보물창고가 열리다’이다. 신안해저선에 실렸던 ‘화물’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덩어리째 전시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동전도 당시 배에 실렸던 양을 실감할 수 있게 꾸러미째 놓았고, 도자기가 목재 상자에 차곡차곡 쟁여져 있던 모습도 재현됐다. 그 많은 도자기와 금속기가 양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된 방식은 수장고를 방불케 한다.

전시의 대미는 신안해저선에 실려 있던 시가 씌어 있는 백자 접시로 마감한다. 분홍빛 나뭇잎 두개에 당나라 때의 한시 구절이 있다.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도 급하고(流水何太急), 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한데(深宮盡日閑)” 풍랑을 만나 가족과 생이별하는 마지막 순간, 배에 탔던 사람들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신안해저선은 당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이 서린 침몰선이었습니다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는 보물선으로 남았습니다. 모든 문화유산에는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마땅히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안해저선에 탔던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면서 전시를 마칩니다.”

이 관장이 직접 썼다는 ‘특별전을 마치며’의 글귀다. 9월 4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