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가습기 살균제 비염 유발 알고도 숨겼나”

입력 2016-07-26 04:02
이정섭 환경부 차관(왼쪽)과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인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흡입하면 비염 등 호흡기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쓰면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비염 등과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사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최근에야 가습기 살균제가 폐 외의 다른 장기에도 손상을 주는지 조사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환경부와 고용노동부를 대상으로 열린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현장조사에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환경부는 1998년 미국 환경청(EPA)의 ‘MIT 재등록 가능성 검토 보고서’를 근거로 2012년 9월 MIT를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이 보고서는 MIT를 중장기적으로 흡입하면 코의 비개골 등이 손상되며 비염이 발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는 MIT를 90일간 흡입한 쥐에서 비염 증상이 나타났으며, 공기 1ℓ당 MIT 0.33㎎이면 쥐의 절반이 죽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 보고서를 유독물질 지정 근거로만 활용하고 비염 등 호흡기 피해를 입증하는 자료로 쓰지 않았다. MIT를 유독물질로 지정한 3개월 뒤인 2012년 12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를 폐섬유화에만 한정했고, 비염 등 호흡기 피해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후 4년 동안 폐 이외 질환 조사를 미뤄오다 올해 4월 “동물실험 등을 통해 새로운 피해 판정기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동물실험으로 비염 발생 가능성을 보여준 미국 환경청 자료가 있었고, 해당 보고서를 인용해 유독물질로 지정했지만 호흡기 질환자들의 피해 호소에는 눈을 감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의원은 “환경부가 MIT를 중장기적으로 흡입하면 비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침묵한 것은 범죄행위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특위의 정부부처를 대상으로 한 현장조사는 첫날부터 파행을 빚었다. 당초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현장조사는 여당 의원들이 지각해 20분 늦게 시작됐다.

그 뒤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등이 “언론에 익숙하지 않은 전문가들을 위해 현장조사를 비공개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환경부도 “법규가 없었다” “제도가 미비했다” “우리 소관 아니었다” 등의 대답으로 일관해 참관하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분통을 터뜨렸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