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반복되는 취업사기… 뻔한데도 당하는 취업준비생들

입력 2016-07-26 04:00

‘검은손’이 달콤한 유혹을 던진 건 2013년 3월이었다. “국방부에 민영재단을 만들어 개혁을 하려고 한다. 재단이 설립되면 별정직 7급 군무원 자리가 나는데, 비용을 내면 7급 군무원으로 채용될 수 있다.”

김모(59)씨와 전모(45)씨는 취업준비생이나 그들의 가족을 꼬드겼다. 착수금 명목으로 1인당 100만∼300만원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은 망설임 없이 돈을 보냈다. 2014년 11월까지 38명이 7923만6000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런 재단은 있지도 않았다. 이들은 취업준비생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할 능력이나 의사도 없었다. 김씨와 전씨는 그냥 사기꾼이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김정곤 판사는 김씨에게 징역 8개월, 전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취업사기가 ‘무한반복’되고 있다. “취업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금품을 달라고 하거나, “자격증을 따면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학원비를 요구하는 빤한 수법이 되풀이되고 있다. “출입증을 만드는 데 체크카드가 필요하다”며 개인정보와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도 ‘고전적 수법’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는 줄지 않는다. 구직자 4명 중 1명은 취업사기를 당한 적이 있을 정도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2일 구직자 759명을 설문조사했다니 26.2%가 취업사기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평균 2.1번 취업사기를 당했고, 피해금액은 평균 694만원이었다.

왜 자꾸만 당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길고 깊게 이어지는 청년실업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사람인의 설문조사에서 피해자들은 그 이유로 ‘급해서’(55.8%)를 첫손에 꼽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10.3%였다. 올 들어 청년실업률은 1월과 5월을 제외하고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사회 부조리가 ‘양념’으로 가미된다. 성공 사례가 간혹 있어 조급한 취업준비생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천지검은 지난 15일 비정규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대가로 1인당 수천만∼수억원을 받은 한국지엠 사내브로커 2명을 구속했다.

취업준비생 신모(26·여)씨는 “대기업에 뒷돈을 주면 취업할 수 있다는 얘기가 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브로커가 붙잡혔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주변에도 ‘500만원을 주면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사기를 당한 경우가 있는데, 절박한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이런 유혹을 그냥 넘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사기를 당한 취업준비생의 개인정보로 대포통장을 만드는 일도 잦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구직자들의 개인정보로 대포통장이 개설되는 경우가 많다며 ‘주의’ 등급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지난 1∼3월 금감원에 접수된 대포통장 개설 관련 피해신고는 51건에 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용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고용주의 요구사항을 거부하기 어려운 구직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 범죄”라며 “계좌 비밀번호나 카드를 양도하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적으로 절박할 때는 판단력이 흐려진다. 청년들이 어떻게 해서도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절박함을 느낄 때 사기를 맞닥뜨리면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조급함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