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교회-서교동교회] 국난 땐 조국에 헌신하고 지금은 지역 섬김 산실로

입력 2016-07-26 21:29
서울 마포구 서교동교회 부설 배영유치원에서 지난 18일 유치원 어린이들과 교사, 우영수 서교동교회 목사(맨 뒷줄 가운데)가 사진을 찍고 있다. 배영유치원의 전신은 서교동교회가 주민 계몽과 문맹퇴치에 힘쓰고자 1925년 설립한 배영의숙이다. 강민석 선임기자
서교동교회가 10년 넘게 운영중인 노인학교 ‘잔다리은빛대학’의 지난 학기 종강파티 모습. 서교동교회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교회의 전경. 이 교회는 지난 121년 동안 지역 복음화와 섬김의 산실로 자리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우영수 목사
서울 서교동의 옛 지명은 ‘잔다리’다. 이 지역에는 연희동 골짜기에서 이어진 개울이 있었고 그 개울 위로 많은 작은 다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잔다리는 양화나루로 가는 길목이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0년 사망한 헤론 선교사의 묘지가 있던 양화나루 근처(현재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를 자주 찾았다. 또 1894년 여름 근방 한강변 언덕에 별장을 짓고 에비슨 선교사 등과 함께 들른 것으로 알려졌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을 따르던 성도들과 잔다리에서 예배를 드릴 기회가 잦았다. 예배는 정기적으로 열렸고, 성도들은 자연스레 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는 ‘1895년 기포드 부인(기보여사)과 언더우드 목사는 피서하며 전도해 교회를 설립했다’고 기록돼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새문안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세운 교회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서교동교회(우영수 목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올해로 설립 121년째인 이 교회는 지역 복음화와 섬김의 산실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의 안디옥교회, 전도와 교육에 힘써=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898년 잔다리교회(서교동교회의 옛 이름)는 ‘계속 부흥하고 있으며 그 해 봄 며칠동안 대단히 흥미있는 부흥성회를 가졌다’고 기록돼 있다. 서교동교회는 서북지역 장로교회의 모체로 성장했다. 1897년 고군보 집사를 통해 김포읍교회(현 김포제일교회)를 개척하고 1903년에는 고순익 집사가 서울 영등포교회(임정석 목사)를, 1931년에는 김영한 장로가 응암교회(김기홍 목사)를 설립했다. 영등포교회는 다시 양평동교회 도림교회를 개척해 서교동교회로부터 촉발 된 전도·개척의 열기는 이어졌다.

교육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06년 소학교를 설립해 청년교육을 시작했고, 1907년에는 예배당과 전도실을 확장해 10여 간의 기와집을 증축, 학교를 신설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교회 정착기인 1925년에는 주민 계몽과 문맹퇴치에 힘쓰고자 배영의숙을 설립했다. 이를 이어받아 1937년 고황경(서울여대 초대총장) 박사가 이화여전 교수로 근무할 당시 자매 고봉경 여사와 함께 교회 부설로 경성자매원을 설립했다. 경성자매원은 후에 1961년 배영유치원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서교동교회에는 수난을 겪은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주재명 목사가 대표적 예다. 1949년 서교동교회에 부임한 주 목사는 6·25 발발 후 피란을 가는 대신 서울에 남아 교회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는 공산치하에서도 주일 오후마다 파고다공원에 나가 노방설교를 했고, 결국 북한군에 납북당해 살해됐다. 현재 서교동교회 앞마당에는 주 목사 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군사정권에 맞섰던 민주투사이자 서울 초대 민선시장인 김상돈 장로, 전 제주지사 이규이 장로 등도 이 교회 출신이다.

지역개발에 따라 교회의 성장도는 변화, 섬김은 변함없어=지역개발과 맞물려 서교동교회는 도심교회로 변모했다. 1915년 경의선 철도가 놓이면서 양화나루의 역할이 줄어들자 유동인구가 줄었고 서교동교회의 성장도 멈췄다. 그러나 1970년대 양화대교가 놓이면서 다시 유동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다시 성장했다. 1980년대에는 지역개발사업이 진행돼 주택가에서 부도심권으로 탈바꿈하면서 다시 정체기를 맞았다.

1988년 부임한 우영수 목사는 ‘기본에 충실한 교회’를 강조했다.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바뀐다고 해도 교회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서교동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을 돕고 있다. 먼저 노인학교인 ‘잔다리은빛대학’을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 100여명이 이곳에서 한국무용과 미술, 레크리에이션 교육을 받으며 노후생활의 활력을 찾고 있다. 토요일마다 문화교실을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바둑, 발레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매년 연말에는 독거노인을 위한 김장나누기를 한다. 또 생필품이 담긴 사랑나눔상자를 마포구 7개 동에 사는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차상위 계층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매년 12월에는 지역 환경미화원과 소방대원 등 200여명을 초청해 식사대접을 하고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창립 120주년을 맞아 성도의 절반 이상인 400여명이 장기기증에 참여했다. 성도 146명은 국제구호개발NGO 기아대책을 통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해외어린이 159명과 결연을 맺었다. 후원아동이 만 20세가 될 때까지 매월 일정 금액을 지원한다. 120명의 개안수술 비용도 지원했으며 아프리카 모잠비크 등에 우물을 파주는 사업도 진행했다. 서교동교회는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재정문제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을 위해 사회봉사관을 무료 식장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우영수 목사의 목회 이야기
“교회는 사랑과 봉사로 하나님 나라 모형이 돼야”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난 14일 서교동교회에서 만난 우영수(사진) 목사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는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교파주의, 교회세습, 목회자의 타락 등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며 “이기적이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교회는 사랑과 봉사, 헌신의 자세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목사는 서교동교회 성도들은 지난 121년간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 온 섬김과 봉사의 정신을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우 목사의 가치관은 그의 다양한 활동에서 드러난다. 우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사회봉사부장을 역임하며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 돌봄을 위한 현장봉사 지원, 유가족 활동지원과 진실규명 강연회 개최 등을 주도했다. 지난해에는 마포구교회연합회(마교연) 회장을 맡아 마포 지역 50여개 교회와 함께 바자회를 열고 수익금 3000만원을 마포구청에 인재육성기금으로 전달했다.

우 목사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노인사역’이다. 그는 현재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한노연)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노연은 ‘노인선교 활성화’를 목적으로 1991년 창립된 후 1994년 예장통합 제79회 정기총회에서 총회사회봉사부 산하기관으로 인준 받았다. 현재 교파를 초월해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노인학교 지도자 교육훈련과 노인학교 컨설팅, 노인상담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우 목사는 “앞으로 급속하게 늘어날 노령인구를 섬기는 것은 물론 그들의 자생력을 키워 사회구성원으로 세우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