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의 연상호(38) 감독은 유머가 넘치면서도 발언에 거침이 없었다. 흥행에 대해 그는 24일 “전작 2편으로 총 관객 4만명을 넘겼으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 ‘부산행’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 두 편을 내놓은 그의 첫 실사영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찌 욕심이 없겠는가. “영화사 측에서 1000만 관객에 대한 러닝개런티를 미리 정산해주면 안 될까요? 1000만 이상은 더 요구하지도 않을 테니.” 농담처럼 던진 진담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일 개봉한 ‘부산행’은 23일 하루에만 128만명이 관람했고 개봉 5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쾌속 질주하고 있다. 1000만 클럽 가입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특급열차에 줄지어 탑승케 하는 것일까. 최근 시사회와 기자간담회, 무대인사 등 3차례에 걸쳐 만난 연 감독에게서 숨은 얘기와 흥행비결 등을 들어봤다.
그는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만든 후 부산행 KTX를 타고 가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서울역’ 배급을 맡은 NEW에서 실사영화로 찍어보자고 제안했어요. 똑같이 찍는 건 의미가 없고 좀비재난영화를 구상했지요. 제작비 얘기가 나와 ‘재미있게 만들 테니 장면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NEW 측에서 86억원(순제작비)을 선뜻 투자했어요.”
영화는 동물이 자동차에 치여 죽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출소녀가 KTX에 타고 좀비로 변한다. 감염 경로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연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예로 들었다. “미군이 오염물질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하잖아요. 진짜 그것 때문이라면 천지에 괴물 투성이게요? 논리적으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공유 마동석 정유미 김수안 김의성 등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지만 좀비들의 액션이 실감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에서 찍은 좀비 장면을 봤어요. 좋은 장면이 너무 많은데 왜 이걸 안 썼지? 생각했어요. ‘곡성’의 좀비 안무가를 우리 영화에 모셔 와서 제대로 활용한 거죠. 다 ‘곡성’ 덕분입니다. 하하.”
좀비의 특성을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좀비는 시체가 살아나서 움직이는 거니까 파워는 없어요.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가 좀비를 맡으면 어색할 것 같아서 무명배우를 썼고요. 마동석이 좀비가 돼 ‘으∼악’하고 물어뜯는다고 상상해 봐요. 얼마나 웃기겠어요. 안소희 연기력이 논란인데 역할에 딱 맞게 했다고 봐요.”
좀비로 인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정부의 대책은 우왕좌왕 무능하기만 하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를 상징하는 듯하다. “제가 시사회 때 ‘성장사회의 이면’ 운운했는데 이렇게 근사한 말을 했다니 저 스스로 놀랐어요. 꼭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지만 관객들이 이런 메시지에 공감하는 것 같아 기분 좋네요.”
부산행 KTX에 동승한 딸(김수안)을 지키려는 아빠(공유)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영화는 후반부 과거 회상 장면에서 갑자기 신파로 흐른다. “원래는 아빠와 아들인데 김수안을 발견하고 부녀로 바꿨어요. 칸영화제에서도 이 대목에서 실소가 나왔어요. 공유가 ‘감독님, 어떡해요?’라며 걱정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믿었어요. 한국에서는 다소 신파적인 부성애가 먹힐 거라고요.”
어떤 장면이 가장 애착이 가느냐는 질문에 “결말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공유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답했다.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이 장면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솜씨가 십분 발휘됐다. 앞으로 찍고 싶은 장르에 대해 그는 “결론이 뻔한 불륜 막장 드라마나 웃기기도 하고 눈물도 나는 블랙코미디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영화 ‘부산행’ 1000만 탑승 유력… “신파적 부성애가 먹힐거라 믿어”
입력 2016-07-25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