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프롬프터를 읽으며 준비된 원고에 비교적 충실했다. 자극적인 막말 대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려는 인상이 역력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파격적인 공약과 구상을 거의 그대로 드러냈다. 전당대회 내내 이어진 ‘패밀리 쇼’는 마지막 날 무대에서 아버지 트럼프를 직접 소개한 장녀 이방카(34)의 당찬 연설로 정점을 찍었다.
통상마찰, 방위비 인상 예고
트럼프는 우선 미국인들의 구직난과 저임금을 교역상대국의 탓으로 돌렸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특히 ‘러스트벨트’(쇠퇴한 중서부 공업지대) 유권자들에게 상당히 어필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당선되면 무역협정을 손보겠다고 했다. 한·미 FTA를 비롯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미국의 모든 무역협정을 불공정협정이라며 재협상 대상으로 지목했다.
트럼프는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철저히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원칙을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이라고 명명했다.
미군의 방위비 분담을 동맹국에 떠넘기겠다는 것도 아메리카니즘의 반영이다. 트럼프는 집권 시 해외주둔 미군의 역할과 비용 문제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했다. 미군 철수나 감축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동맹국들이 방위비 분담을 더 많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서는 미국이 주도해온 중동의 대테러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비용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구상을 처음 밝혔다. 당초 연설 4시간 전 배포된 원고에는 없던 내용이다.
그가 당선되면 미국은 한국과 일본, 유럽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미 외교안보정책 전문가 90명은 지난 19일 “트럼프의 외교공약이 미국을 자유세계의 질서로부터 후퇴시킬 뿐 아니라 동맹국과의 유대도 약화시킬 것”이라면서 그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슬람 입국금지’ 발언은 빠졌지만
트럼프는 이민정책에 대한 강경한 기존 입장도 고수했다. 그는 “현행 미국의 이민정책은 테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주장도 했다. 다만 숱한 비판을 받았던 ‘모든 이슬람의 입국금지’ 주장은 연설에서 빠졌다.
그는 잇단 테러와 경찰관 피격사건을 거론하며 ‘법과 질서’의 회복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50대 도시의 범죄율이 1년 만에 17% 증가했으며, 총격으로 피살된 경찰관 수는 50% 늘어났다”며 유권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집권하면 감세와 규제완화를 신속히 단행하고, 불필요한 정부지출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저소득층 흑인과 히스패닉, 대학생의 학자금 부담 등 소외계층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해결책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취약계층을 공략하는 카드인 동시에,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런 정책들을 요구해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층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딸은 여성비하 이미지 지우려 안간힘
트럼프는 장녀 이방카를 무대에 내세워 패밀리 파워를 과시했다. 이방카는 트럼프 연설 직전 무대에 올라 “아빠는 사람을 기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그룹에는 남성보다 여성 임원이 더 많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 이미지가 강한 트럼프를 위한 변명이었다.
한인 여성 리사 신(48·작은 사진)도 트럼프 지지연설에 나섰다. 신씨는 “힐러리 클린턴은 경제를 황폐화시킬 것이며 그의 위험한 이념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안보와 경제를 지켜줄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전날 찬조연설에서 끝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은 데 대해 비난여론이 일었으나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크루즈는 지지자들과의 모임에서 “내 아내와 내 아버지를 욕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틀 전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고도 했다.
클리블랜드(오하이오)=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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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나의 원칙은 ‘미국 우선주의’ 아메리카니즘”
입력 2016-07-22 18:05 수정 2016-07-23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