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휠체어 금지법

입력 2016-07-22 18:21

수년 전 한 재벌회장이 배임·횡령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그룹 계열사의 부장급 직원이 교도소장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어떻게 하면 회장님이 빨리 나올 수 있겠느냐”고 조언을 구했고 친구는 “무조건 아프다고 드러누워라”고 응해줬다. 회장은 재판을 받는 동안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하곤 했다. 지금 그 회장은 회사로 복귀해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직원은 임원이 됐다고 한다. 재계에서 알음알음 도는 얘기여서 실제로 그런 ‘조언’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재판을 받는 우리나라 재벌회장의 모습은 정형화돼 있다. 거의 전원이 병상에 누운 채로 또는 휠체어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재판정에 들어선다. 1000만 관객이 든 영화 ‘베테랑’ ‘내부자들’과 인기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에 나온 회장님들 모습이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골프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나 왔다. 앞에 예를 든 회장도 재판 때 휠체어를 애용했지만 지금은 젊은이 못지않은 활동량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그사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되풀이되다 보니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얘기만 나오면 여론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조성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다음 달 8·15사면에 어떤 기업인들이 포함될지 국민이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휠체어 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될 예정이다. 새누리당 경제통인 이혜훈 의원은 “대기업 총수 오너 일가의 배임 등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사면권 남용을 제한하는 휠체어 금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조만간 제출하겠다”고 22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재벌회장들이 고액의 횡령·배임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 종전보다 높은 형량을 받게 돼 집행유예가 불가능해진다. 또 300억원 이상으로 그 이득액이 막대한 경우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법이 제정되면 가짜 환자 노릇을 해 풀려나는 일이 없어질지 주목된다.

한민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