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 싸게 파는 바자로 기부금 마련
“오랜만이에요. 돈가스 맛있는데 있어요?” “그럼요. 그 집 둘째가 좋아한다고 했죠!”
“어! 다 ○○보다 더 싸네!” “싸기만 한가요, 품질도 좋아요.”
“이번 휴가 때 모자와 보조가방이 필요했는데 딱 좋아!” “예 선물하기도 좋습니다.”
찜통더위로 땀이 쏟아지던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주민센터 부근의 상아빌딩. 평소 조용하던 4층과 5층이 왁자지껄했다. ‘켈리 스튜디오’가 주최한 자선바자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바자. 압구정만두, 백암왕순대, 망향콩국수 등 인기 있는 먹거리는 오전에 이미 바닥이 났다. 오후 3시가 지나자 손님이 뜸해졌다. 오후 4시 바자가 끝나자 아로마 천연제품을 판매한 ‘라엘’ 7만6000원, 수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판매한 ‘샌드비’ 3만3000원, 의류와 슬리퍼 등을 판매한 ‘롤링호박’ 9만원…. 판매자들이 켈리 스튜디오의 이정현(52)씨에게 돈을 내놨다. 이씨는 “우리 바자에 참여하는 판매자들에게 판매금의 10%를 받아 성가정 입양원에 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자받침 등 주방용 소품을 판매해 5만원을 내놓은 차소영(35)씨는 “상품도 판매하고 기부도 할 수 있어 좋다”면서 성가정 입양원에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켈리맘들은 현재 고등학생 자녀들이 초등학생일 때 학부모로 만났다.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한 뒤에도 만남을 이어갔다. 몇 해 전에는 2년 넘게 꽃꽂이를 배워 강사에게 ‘하산해도 좋다”고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꽃집을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내는 이가 생겼지만 돈이 문제였다. 수시로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며 기와집을 여러 채 지었다가 허물던 이들에게 행동파 이정현씨가 불을 지폈다. “그까짓 꽃집 해보지 뭐. 우리가 100만원씩만 내서 ‘우리만의 공간’을 마련하자. 거기서 수다도 떨고, 꽃집도 하고, 그 돈을 성가정 입양원 돕는 데 쓰자”고. 6명의 아줌마는 박수로 통과시켰다.
공유경제 도전하는 ‘아줌마 협동조합’
7명이 100만원씩 쌈짓돈을 털어 종잣돈을 마련했다. 여의도 토박이인 이들은 여의도 구석구석을 뒤져 지금의 공간을 찾아냈다. 4층이어서 꽃집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라는 조건에 끌려 계약했다. 탁자 의자 등은 재활용품을 적극 활용하고, 아줌마 7명이 청소하고, 페인트칠 하고, 전등 달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2013년 12월 10일 ‘켈리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레이스 켈리처럼 우아하게 살다 오드리 헵번처럼 착하게 죽자!’란 목표로 붙인 이름이다.
4층에 간판도 없는 꽃집을 알리기 위해 이들은 졸업·입학 시즌에는 꽃다발 공동구매를 했다. 그리고 매월 셋째 수요일 정기적으로 바자를 했다. 좋은 물건을 확보하려고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을 이 잡듯 뒤지고 개인적인 인맥까지 총동원했다. 그렇게 마련한 바자 물건은 ‘살림 고수들’을 사로잡았다. 단골이 늘면서 매월 셋째 주 수요일 바자에선 1000만원어치 이상 판매되고 있다.
꽃집도 ‘좋은 꽃을 멋지게 포장해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늘고 있다. 꽃집은 이순미(52)씨와 이연(52)씨가 당번을 정해 지키고 있다. 수익이 나면서 이번 달부터는 출자금의 일부도 돌려받고 있다. 물론 판매금의 10%는 꼬박꼬박 ‘켈리저금통’에 넣고 있다.
켈리 스튜디오에선 일주일 내내 강좌가 진행된다. 수채화, 프랑스자수, 돌하우스&미니어처, 꽃취미반, 뜨개질…. 수업하는 강사들도 수강료의 10%를 기부하고 있다.
카페 관리를 맡고 있는 박정임(50)씨는 “지금도 열심히 뛰는 ‘아줌마 협동조합’이지만 카페 회원수가 2000명이 되면 그 기념으로 협동조합 신청을 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현재 카페 회원 수는 1800여명이다.
‘켈리 스튜디오’는 얼마 전 옆 사무실을 임대했다. 그리고 또 다른 실험에 나섰다. 새로 마련한 공간을 꽃집으로 꾸민 이들은 처음의 꽃집을 갤러리 전용공간으로 만들어 요일별로 분양하고 있다. 원하는 요일에 갤러리를 작업실이나 수업장소로 쓰는 대신 보증금을 분담하는 것. 현재 월·금요일은 자수와 수채화 강의를 하는 송영면씨가, 화요일은 미니어처 작가 임태희씨가 분양받았다.
임씨는 “개인 갤러리는 꿈도 못 꿨는데 켈리 스튜디오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 작업실을 갖게 됐다”며 좋아했다. 송씨는 “멋진 언니들 덕분에 개인 작업실도 생기고 기부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일하는 보람, 웃음 되찾은 아줌마들
켈리 스튜디오에 오면 이들은 10대 소녀들처럼 웃는다. 켈리맘들은 켈리 스튜디오 덕분에 인생 2막의 화려한 커튼을 올리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우울증 직전까지 갔었다는 이순미씨는 새 삶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바자를 도우러 나왔던 순미씨의 딸 김영서(20·한예종1)양은 “엄마가 전에는 우울하고 무기력했는데 켈리 스튜디오를 하면서 활기가 생겼고 항상 들떠 있다”고 말했다.
이연씨는 “쉰이 넘어서 이렇게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면서 “쉽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한다고 남편이 놀라고 있다”고 자랑했다.
성가정 입양원 남혜경 원장수녀는 “단순한 정기 후원금이 아니라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 후원금이라 훨씬 값지게 느껴진다”면서 “이 모임 덕분에 봉사자와 후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2013년 12월 켈리 스튜디오 오픈 때부터 지난 6월까지 기부한 금액은 총 3995만9700원이다. 켈리 스튜디오는 이달에도 바자 수익금 113만3200원에 켈리 모금함에 있는 54만8200원을 더해 168만1400원을 후원하게 됐다.
이정현씨는 “우리처럼 작은 모임들이 도움이 필요한 단체를 하나씩 맡아서 돕는다면 더욱 밝은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면서 “손이 떨려 꽃꽂이를 할 수 없을 때까지 쭉 달릴 것”이라고 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협동조합으로 통큰 기부… 켈리·헵번처럼 멋진 그녀들
입력 2016-07-23 04:04 수정 2016-07-24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