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은] 저출산과 ‘라이펙시트’

입력 2016-07-22 18:01

최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가 세계에서 가장 급속히 진행되기에 인구수를 약간이라도 늘릴 수만 있다면 저출산 대책을 추진한 공로로 국민훈장을 받는 상황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비군훈련장에서 정관수술 받으면 일찍 집에 보내주고 인공유산까지도 정부가 눈감아주면서 가족계획을 추진했었는데 이제는 인구를 늘리는 별의별 아이디어를 모으고 시상하고 있으니, 조금만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으면 이런 혼란스러움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전셋값이 치솟고 자녀양육비가 너무 부담이 되는 등 삼포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부득불 결혼을 늦추고 출산까지 기피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물론 이러한 여러 시대적 상황과 풍조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예방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 인간생명으로 형성된 수많은 생명들이 생명기간 중에 우리 곁을 소리 없이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낙태와 자살이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아울러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우리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사망사고로 많은 생명이 사회의 안전망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라이펙시트(life+exit)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브렉시트(Brexit)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적 공황의 위기를 가져온다면 라이펙시트는 생명의 차원에서 더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것이기에 우리는 생명이 빠져나가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매년 자행되는 30만건의 낙태가 예방되고, 10만명당 30명의 세계 1위 자살률이 둔화될 수 있다면, 그리고 매일 136명이 죽거나 다치는 음주 교통사고가 줄어들고, 한 해 2000명이 사망하는 산업재해를 막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인구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어진 공동체입니다. 그물의 실과 실이 서로 묶여 그 어떤 연약한 생명체도 이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내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소중한 임무일 것입니다. 이 그물코가 풀리면 틈이 생기고 어느새 우리 주위의 소중한 생명이 이 틈을 통해 빠져나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생명과 안전에 관한 법과 규제는 이 그물망을 촘촘히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지만 자칫하다가 그물코를 터뜨려 생명이 빠져나가는 라이펙시트를 초래하게 된다면 이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술 배달을 허용하는 규제개혁은 일부 주류제조업체나 주류판매업의 반짝 성장을 기대할지 몰라도 음주로 인한 각종 사고를 야기해 더 많은 생명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가습기로 인한 집단사망 사고도 잘못된 규제완화에서 비롯된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었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소망하며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 우리의 소중한 생명이 떠나지 않도록 막아내어 생명존중 문화가 꽃피는 생명나라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박상은 샘병원 대표원장(국가생명윤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