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패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20일(현지시간)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서 사흘째 이어진 전당대회 찬조연사로 나섰다. 그는 “트럼프에게 축하한다”며 연설을 시작했지만 끝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프로농구 르브론 제임스 선수가 돌아와 클리블랜드가 승리한 것처럼 미국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권 도전에 다시 나설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크루즈는 연설에 앞서 전당대회장 인근에서 자신의 지지자만을 상대로 별도의 집회를 열었다. 크루즈의 지지자들은 “2020, 2020”을 외쳤다.
공교롭게도 이때 트럼프를 태운 헬기가 집회장소를 지나가면서 크루즈의 목소리는 소음에 묻혔다. 크루즈는 허탈한 표정을 애써 감추고 곁에 있던 참모 제프 로에게 “이 헬기, 네가 일부러 띄웠냐”고 조크를 던졌다.
크루즈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양심에 따라 투표하라”고 했다. ‘양심투표’는 대의원이 지역경선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전당대회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룰을 바꾸자는 크루즈 지지자들의 구호였다.
순간 트럼프 지지자들은 크루즈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우리는 트럼프를 원한다”고 외쳤다. 장녀 이방카 등 트럼프 가족의 표정도 싸늘했다. 이때 트럼프가 예고 없이 전당대회장에 들어서면서 연설이 끝나지 않은 크루즈에게 쏠린 시선을 다시 한 번 가로챘다.
전당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대선을 향해 뛰는 공화당 주자들이 트럼프와 빚는 파열음이 심상치 않다. 크루즈와 함께 트럼프에 맞서 마지막까지 3자 대결을 펼쳤던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클리블랜드에서 별도의 정치자금 모금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전당대회장은 외면했다. 다분히 다음 대선을 노린 행보였다. 현역 주지사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 불참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전날 찬조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딱 두 번 불렀던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이달 중 공화당의 큰손 코크 형제가 후원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등 대권 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선택은 트럼프뿐”이라고 말해 대조를 보였다. 펜스는 연설의 대부분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비난하는 데 할애하고 “다시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트럼프그룹의 연설문 작성자 메레디스 메카이버는 성명을 내고 “멜라니아 트럼프의 연설문 표절 논란은 내 실수”라고 밝혔다. 메카이버는 “멜라니아가 미셸 오바마 여사를 존경한다며 연설 문구를 불러 줬는데 확인하지 않은 것은 내 불찰”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사직서를 냈지만 반려됐다.
클리블랜드(오하이오)=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찬조연설 나선 크루즈, 끝내 트럼프 지지 안해
입력 2016-07-21 18:46 수정 2016-07-21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