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은 북한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노력으로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준비 중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탈출해 (일)자리를 잡는 것이 탈북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의 탈북자 A씨는 서울시에 제출한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사업) 신청서에 지원 동기를 이렇게 적었다. 목숨을 건 탈북보다 더 어려운 취업이라는 표현에 탈북 청년의 절박감이 묻어난다. 사립유치원에서 야간돌봄교사로 일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B씨(여)는 월 수입이 세후 80만원 정도인데 경리·회계 분야로 직장을 옮기고 싶지만 각종 교재나 학원비 등 비용이 버거워 접어두고만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지난 15일 청년수당 신청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6309명이 지원해 대상자 3000명을 2배 이상 웃돌았다. 미취업 청년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청년들의 작은 소망이 현재로선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처지다.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을 사회보장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조만간 시정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시정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복지부는 이 사업을 직권취소할 수 있다. 물론 서울시는 청년수당 사업이 사회보장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거나 대법원에 제소해 법적으로 다툴 수 있다.
문제는 직권취소가 내려지면 사업은 당장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어렵게 경쟁을 뚫고 청년수당 대상자로 선정돼 취업에 도전하려던 청년들이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으로 또다시 좌절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복지부는 그동안 서울시와 청년수당 사업에 대해 수차례 협의를 진행해 왔고, 시가 제출한 수정안에 사실상 동의한다는 구두 통보까지 한 상태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입장을 바꿔 외압 논란을 일으켰다.
미취업 청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시간과 돈, 제대로 된 취업지원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고, 돈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런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월 50만원씩 최장 6개월간 청년수당을 지급해 사기를 진작하고 취업 준비를 돕겠다는 사업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게 합당한지 묻고 싶다. 지금은 청년수당의 절차적 적법성을 따지기 전에 미취업 청년들의 아픈 현실을 보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본다.
청년수당을 신청한 한 청년은 이렇게 호소했다. “누군가에겐 선거 때 표를 위해 환심을 사기 위한 일이고 누군가에겐 유흥비로 소비될 돈이라고 생각될 일이지만 오늘 하루 밥값이 아까워 아침 일찍 도시락을 준비하고 대중교통비가 부담돼 학원도 거리에 따라 선정하는 저 같은 청년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일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현실에 맞게 자체 예산으로 주민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을 중앙정부가 사전 협의나 교부금 삭감 등으로 옥죄기보다 기존 정책과 중복되지 않게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것이 맞다. 청년수당 사업도 불완전한 부분이 있지만 일단 올해 6개월간 시범 실시해보고 그 결과를 서울시와 복지부가 공동 평가해 내년에 본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각박한 현실에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함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복지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탈북보다 어려운 청년 취업
입력 2016-07-21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