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냐, 20%냐.
지난달 초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기자단 브리핑을 하면서 “논의의 장에 올린 뒤 세법 개정에 포함시킬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공익법인에 주식으로 출연할 때 상속·증여세 면세 한도를 현행 5%에서 20%로 대폭 높이는 방안이다.
공익법인은 비영리법인 중 종교, 학술, 장학, 의료, 문화·예술 등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법인이다. 지난해 말 기준 3만4000여개다. 이들 공익법인에 기업이 주식을 기부할 때 비과세 한도를 넓혀주려는 것이 정부 기조다. 기재부 관계자는 20일 “이번 세법 개정에는 공익법인 표준화된 회계기준을 담기로 했다. 비과세 한도의 상한 여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익법인 표준회계 마련 정책은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보유 주식의 비과세 한도 확대에 앞서 투명성부터 확보하려는 수순으로 보인다. 현재 내국법인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경우 5%까지는 상속·증여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이 증여세 면제 조항을 총수 일가의 경영권 강화나 다른 기업 인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과세 한도 확대를 반대해온 쪽의 중요한 근거다.
5% 룰, 확대안 고심 중
지난달 기재부는 세제 개편안에 공익법인 관련 규제를 포함시키기 위해 공청회를 열었다. 정부의 고민도 일부 대기업이 공익법인을 경영권 방어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른바 ‘5% 룰’에 따라 공익법인에 출연한 주식의 5%에만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다.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재벌 계열사 주식 공익법인 기부→상속·증여세 면제→의결권 행사→지배력 유지·강화’로 이어진다고 비판해 왔다.
지난해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오르면서 상속이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두 재단은 2014년 기재부가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해 보유한도 10%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았다.
반대로 5%로 제한하면서 기업의 순수한 기부에 제약이 가해지는 면도 있다. 공익법인은 물론 기부하는 입장의 기업도 비과세 혜택 상한선을 높여주길 요구해 왔다.
정부는 일단 주식 보유 한도를 5%에서 최대 20%까지 늘리는 대신 경영권 방어 등에 이용되는 경로를 막는 방향으로 세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주식을 기부하는 문은 넓히고,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윤지현 교수는 최근 공청회에서 미국 공익법인의 의무지출제도를 국내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의무지출은 공익재단의 투자자산(고유목적용 자산 제외) 중 매년 일정 금액을 의무적으로 공익 목적 사업에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방법이다.
야당은 아예 의결권 제한을 주장하고 있다. 주식 기부 비과세 상한선인 5%를 20%로 높이는 대신 의결권은 5%만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의결권 제한을 전제로 세금 혜택을 늘려주겠다는 것으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투명성 높여 논란 잠재운다
비과세 한도 상향을 두고 논란이 많다 보니 정부는 우회 전략을 선택했다. 공익법인의 표준 회계 기준을 만들어 내년도 세법에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 공익법인은 공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결산서류를 공시하고 있고, 자산이 100억원을 넘으면 외부감사까지 받아야 한다. 외부감사 시에 통일된 회계기준이 없어 효과적인 감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공익법인 소관부처마다 법규도 제각각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준이 없어 회계 정리도 제각각이다 보니 외부 감사를 받지 않으려고 회계작성에 꼼수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공익법인에 적용할 표준회계기준 초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표준양식에 맞춰 작성한 회계 내용은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표준회계기준을 만들면 기부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시 자료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기부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이 비과세 한도 확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비과세 한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라며 “회계상 이렇게 투명한데 비과세 한도를 늘려도 되지 않겠냐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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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21 0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