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 관여 안했다더니… “장모가 불러 계약현장 갔다”

입력 2016-07-21 00:32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우 수석은 20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각종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병우(49) 청와대 민정수석이 처가와 넥슨코리아의 1326억원 부동산 계약서 작성 자리에 동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 수석이 계약서상의 법률 문제를 직접 검토했다는 복수의 증언도 나왔다. “처가 소유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적 없다”는 사건 초기의 해명이 거짓이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계약은 평일 근무시간에 이뤄졌다. 우 수석은 국민일보가 해당 의혹을 보도 한 지 몇 시간 만에 “장모님이 와달라고 해서 (현장에) 갔다”고 공식 시인했다.

당시 매매 계약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쪽은 2011년 3월 18일 서울 강남역 인근 삼남빌딩(현 센트럴 푸르지오시티) 2층에서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우 수석 처가가 상속받은 강남구 역삼동 825-20 일대 4필지(3371.8㎡)와 건물이 대상이었다. 대규모 부동산 거래인 만큼 매수인인 넥슨 측 대리를 맡은 로펌 김앤장이 추려서 갖고 온 계약서만 20여쪽에 달했다.

계약서 작성은 우 수석의 처가와 넥슨 임원 등 당사자들만 별도로 회장실에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변호사, 공인중개사 등은 그 옆 회의실에서 대기했다. 계약서 검토 당시 우 수석도 회장실에 있었다. 외부인들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 앞서 우 수석의 장모 김모(76)씨는 “도장을 찍기 전 사위가 와서 계약서를 볼 것”이라고 매수인 측에 말했다고 한다. 넥슨 관계자는 “우 수석이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고 사위라고만 소개하면서 계약서를 보러 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계약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저쪽(우 수석 처가) 사모님이 ‘결정을 내리기 전 누구한테 좀 맡기겠다’고 했다. 회장실에서 뭔가 웅성웅성 논의하는 소리가 들렸고,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나머지 사람들은 회의실에서 기다렸다”고 전했다.

우 수석은 20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계약 당일 장모님이 와 달라고 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나서 살림하는 분이 불안하다고 해서 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모님은 장인어른이 열심히 일해서 번 땅을 본인이 지키지 못하고 판다는 부분에 대해서 많이 우셨다”면서 “제가 한 일은 장모님 위로해 드린 게 전부”라고 밝혔다. 계약서 작성 현장에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본인의 역할을 ‘장모 위로’로 한정시켜 말한 것이다. 우 수석은 지난 18일 처가 부동산 관련 의혹이 처음 불거져 입장자료를 냈을 때도 ‘처가로부터 확인한 사항’이란 식으로 거래 과정을 설명했다. 자신과 문제의 부동산 계약은 무관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300억원대 돈이 오가는 계약을 맺으면서 매도인 측 유일한 법률 전문가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여러 정황상 계약서 내용에 대한 최종 검수자 역할을 했을 공산이 크다. 복수의 참석자들도 “우 수석이 계약서를 직접 검토했다”고 말하고 있다.

계약이 체결된 2011년 3월 18일은 금요일이었다. 그날 오전 검찰은 삼화저축은행 압수수색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 며칠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의 5개 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하는 등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바삐 진행하던 때였다. 우 수석은 중수부장 바로 밑의 수사기획관으로 현장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당일 계약서 작성은 오전 10시부터 4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황인호 지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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