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어쩌면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를 휴가길 책 한 권

입력 2016-07-21 20:44
올해 여름휴가 추천도서는 북스테이 주인장들께 부탁드렸습니다. 북스테이(Bookstay)는 ‘책(book)+숙박(stay)’으로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서점이나 문화공간 중심으로 전국 10여 곳에서 북스테이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느릿하고 고요한 휴가를 원하신다면 북스테이를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책이 좋아서 책이 그득한 집을 지어놓고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북스테이 운영자 다섯 분이 골라주신 책들을 소개합니다.

■백석의 평전·詩 따라 그의 삶 속으로

극단 ‘뛰다’는 지난 2년 동안 일본의 극단 ‘새의극장’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는데, 지난 봄에는 두 나라 배우들이 예술텃밭에 같이 머물며 워크숍을 하기도 했습니다. 두 친구 예술가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시를 사랑하는 모임’을 통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애썼습니다. 백석 시인의 시들을 연극의 재료로 다루다가 그의 평전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평전’(다산책방)은 백석의 삶을 꼼꼼히 따라가면서 그의 시를 다시 읽게 만듭니다. 백석이라는 창을 통해 일제 강점기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한 지식인이 심하게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태어난 예술가들의 처지를 무척 공감하게 만듭니다. 한여름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시 한 시인의 삶을 따라가 보는 것도 제법 낭만적인 호사처럼 느껴집니다.

백석의 첫 시집 ‘사슴’은 참 고독한 품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접 표지 디자인과 편집을 맡은 ‘사슴’은 전설의 희귀본으로 유명했었는데 얼마 전 영인본으로 복원해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후배 배우가 깜짝 선물한 그 시집을 받아보았을 때 마치 옛 시인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이 감격스러웠습니다.

문화공간 예술텃밭(강원도 화천)은…

극단 ‘뛰다’의 예술가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여러 예술가들이 머물며 창작의 씨앗을 키우는 창작레지던시 공간입니다. 더불어 문화와 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도 자연을 즐기며 머물다 갈 수 있는 펜션과 그림책방도 마련돼 있습니다.

■고도 문명의 시대, 농사를 생각하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농사이야기에요. 농사(농업)의 역사는 오랜 시간 인류가 자연을 일궈온 역사지요. 그 시간의 집적으로 이룬 것이 문명이라면, 어쩌면 우리의 역사는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도록 부단히 싸워온 시간이겠죠. 그 치열한 흔적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 ‘온 삶을 먹다’(낮은산)예요. 작가로, 문명비평가로, 농부로 살아온 저자 웬델 베리는 문명의 편으로 쏠림이 극심한 이 시대에, 그에 겨루는 구체적인 방식을 농사, 농부, 먹을거리로 살펴 보여주고 있답니다.

‘책마을해리’에서는 농사짓듯 책을 짓습니다. 우리끼리 ‘책농사’라고 하죠. 우리가 지어놓은 책농사 이야기도 조금 소개할게요. 이 동네 마을 아짐(아주머니)들이 일 년 동안 땅 일구듯 글 일구고 그림 일궈 엮은 책 ‘개념어 없이 잘 사는 법’(기역)이에요. 생활 속 입말들이 고스란히 삶글로 가라앉고, 그림 한 번 배운 적 없어도 평생 만지고 보아온 것들의 속살을 잘만 그려내 꾸밈없이 개켜두었지요.

책마을해리(전북 고창)는…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을 이야기하며 바다 가까운 시골마을에 자리를 잡았어요. 폐교를 고쳐 책 학교를 열고는 갯벌, 염전, 고인돌, 판소리, 동학 같은 체험을 모아 책으로 엮는 출판캠프도 진행하고 있어요. 해리포터처럼 독자-저자의 관계가 뒤섞이는 마법의 공간이죠. 책숲시간의숲, 바람언덕, 종이숲, 버들눈작은도서관, 책감옥, 마을사진관, 한지공간과 활자공간, 마을책방, 북스테이로 이루어진 출판테마공간이에요.

■詩의 목마름 풀어준 함민복 시집

북스테이를 열고 두 번째 맞는 남쪽의 여름. 한낮의 햇살을 피해 각자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책방 앞 나무 그늘 아래 앉았습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은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에 대한 갈망이 강렬해졌을 때 함민복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벌컥벌컥 시를 들이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전 강화도에 내려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버린 시인의 언어는, 그렇게 말랑말랑하진 않더군요.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아내가 고른 책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와 닮은 ‘가족의 시골’(마루비)입니다. 평생 아파트 엘리베이터만 이용하다가 어느 날 안동의 고택으로 이사한 한 가족의 낯설고도 평화로운 일상을 일기로 쓴 책입니다. “아이가 마당 풀밭에서 똥을 누고, 하늘은 정지화면처럼 푸르고, 새들은 자유롭게 날고, 나른한 봄볕이 발끝에 머물고 있었던” 빈 고택과의 첫 만남은 우리가 만났던 통영의 속살과 다르지 않더군요.

‘말랑말랑한 힘’도 ‘가족의 시골’도 일상을 벗어난 휴가지에서 함께하면 더없이 좋을, 자연을 가득 담은 책입니다.

봄날의집(경남 통영)은…

‘봄날의집’은 38년 된 폐가를 동네 건축가와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함께 6개월 동안 고쳐서 책방을 겸한 숙박 공간으로 꾸며놓은 곳입니다. 통영의 문화예술을 알리기 위해 각 방을 전시를 겸한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전혁림 미술관 옆, 오래된 목욕탕과 동네 식당, 그리고 벚꽃길 가득한 봉수골에 자리해 정겨운 옛 동네의 일상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탄생 과정을 그리다

해마다 여름이면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손에 들고 휴가를 떠나곤 합니다. 이번 휴가에는, 이번 여름에는 반드시….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제를 마친 사람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 소설은 매년 여름 누군가의 반복되는 숙제로 군림해 왔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얘기입니다.

그런 그들을 안타까이 여긴 세 명의 그림 작가가 올 여름, 책 한 권을 건넵니다. 1965년 여름, 멕시코 아카풀코 해변을 향한 고속도로, 흰색 자동차, 행복한 가족,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마르케스. 가족과 함께 즐겁게 해변을 향하던 그 순간 작가는 영감에 사로잡혀 소설의 첫 구절을 완성합니다. ‘스페인어로 쓴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이 탄생했고, 여름 휴가길은 작가의 삶을 바꿨습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이 소설을 어떻게 구상하고 완성했는지 그의 삶을 그래픽 노블로 재현한 ‘마르케스-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푸른지식)은 마술처럼 읽는 이들을 1900년대 부엔디아 가족에게로 데려다 주고, 어쩌면 이제 누군가는 긴 여름의 끝에서 오랜 숙제를 마무리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속작은책방(충북 괴산)은…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책을 통해 자신과 만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낮에는 책을 파는 서점, 밤에는 북스테이 민박으로 운영합니다. 책방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은 꼭 책 한 권을 사가야 하는 행복한 소비의 의무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세계 32개 도시를 책으로 여행하다

당신의 휴가가 한여름이라면, 갑남을녀의 휴가지로 가기위해 짐을 싸기보다 오히려 텅 빈 내 집의 한적함과 대면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를 바꾸기보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한 여행자의 책이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어바웃어북)입니다. 전 세계 32개 도시를 1만517페이지의 책으로 여행한 작가의 여정에 안락하게 편승할 수 있습니다.

짐을 싸서 공항으로 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떤 혼란한 장소에서도, 어느 페이지에서 읽기를 시작해도 괜찮은 책이면 어떨지.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미래의창)은 카페, 앙팡, 모드처럼 익숙한 37개 외국어 단어의 뿌리를 밝히고 있어서 우리 것이 아니었던 역사와 문화를 장엄하지 않은 방식으로 길 위에서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모티프원(경기 파주)은…

모티프원은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안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모티프원은 ‘삶의 제 1 동기’를 일컫습니다. ‘내 심장을 여전히 뛰게 만드는 존재의 이유’를 의미하지요. 이 공간을 방문하는 분들이 자신의 ‘모티프원'과 조우하기를 희망한 이름입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고, 눈을 마주친 적이 없었던 사람을 만나고, 1만3000여권의 책을 만나고, 그 책의 원전인 자연을 만나는 곳입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