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6만명 체포·해고… 터키, 전대미문의 숙청 바람

입력 2016-07-21 00:07
터키 남부 항구도시인 메르신에서 19일(현지시간)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로 구금돼 있던 네자트 아틸라 데미르한 전 해군 지중해사령관(맨 앞)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터키는 이날까지 쿠데타에 직접 가담한 군인은 물론 경찰과 사법부 판사, 교사, 대학 학장 등 6만명을 숙청했다. AP뉴시스

터키에서 실패한 쿠데타의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군과 법조계에 이어 교육계까지도 숙청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된 재미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 송환 문제가 외교 마찰로까지 번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터키 고등교육위원회는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 학장 1577명 전원에게 사표를 지시했다. 귈렌과 가깝거나 쿠데타에 동조한 교육계 인사를 솎아내기 위한 사전조치로 풀이된다. 교육부도 쿠데타와 연루됐다고 의심되는 사립학교 교사 2만1000명의 교사면허를 취소했다.

NYT는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체포되거나 해고된 인원이 군인, 경찰관, 사법부 판사 등을 합쳐 3만500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터키 국영 아나돌루통신은 총리실에서 257명, 교육부 1만5200명, 내무부 8777명, 가족사회정책부 393명, 종교청 492명이 직위해제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합치면 사법부와 행정부에서만 체포되거나 해고된 공무원이 6만명에 육박하는 셈이다. NYT는 이들 대부분이 귈렌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터키 당국은 대대적 숙청 작업이 ‘펫훌라흐 테러 집단’의 정부 전복 음모를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면서도 귈렌이 쿠데타의 배후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터키에서는 귈렌의 송환을 거부하는 미국에 대한 불만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비날리 일디림 총리는 “우리의 우방이 암살단체 조직원의 민주정부 전복 시도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내놓으라’고만 한다”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며 귈렌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증거를 먼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터키 친정부매체에는 “미국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칼럼이 실리기까지 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런 가운데 터키 정보 당국(MIT)이 쿠데타 모의를 사전에 알고 군 수뇌부에 첩보를 미리 전달했다고 터키 일간 휴리에트가 보도했다. 이는 사전에 쿠데타를 전혀 예상 못했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설명과 전혀 다르다. 터키군 참모본부는 쿠데타 개시 약 5시간 전 정보 당국으로부터 쿠데타 첩보를 전달받고 군에 장비이동 금지와 기지폐쇄 명령을 내렸다. 쿠데타 가담 혐의를 받는 장성만 수십명에 달하는데도 당일 동원된 병력이 많지 않았던 점은 이로 인한 결과로 해석된다.

때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귈렌과 세속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이슬람주의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조작했다는 ‘음모론’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