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히든챔피언 키운다더니… 겉도는 ‘월드클래스 300’

입력 2016-07-21 04:43

‘한국형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는 ‘월드클래스 300’ 사업이 겉돌고 있다. 수출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을 대표적인 수출기업으로 집중 육성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관련 당국은 이미 안정적 성장 궤도에 진입한 기업들을 선정, 사업 취지에서 벗어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월드클래스 300 사업이 될성부른 중소·중견 기업을 수출 중심의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기보다 사업 실패를 피하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은 1년에 8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수출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매년 30∼50개씩 선정해 연구·개발(R&D), 해외 마케팅 등 각종 지원 혜택을 주고 있다. 성장 잠재력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기청은 전년도 매출액 4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 선정된 231개사 중 절반이 넘는 곳은 매출 1000억원을 넘긴 기업들이었다. 절반이 넘는 곳이 월드클래스 300 사업에 참여하기 전 이미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한 셈이다.

국민일보가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지정된 업체 231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지정 연도 당시 매출액이 1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107개였고, 124개 기업은 1000억원이 넘었다. 36개 기업은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기업이었다. 2012년 지정된 대웅제약과 서울반도체의 경우 지정 당시 매출액이 7000억원대인 탄탄한 중견기업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날 만한 기업을 뽑아 (중기청) 사업 실적이 악화될 위험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월드클래스 300 사업이 기업의 성과와 직결되는지도 불투명하다. 2011년부터 지정된 월드클래스 300 기업 중에는 지원을 5년째 받는 곳들도 있는데 매출이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감소한 기업이 절반에 달한다. 지난해까지 선정된 181개 기업의 월드클래스 300 선정 전후 매출액을 비교 분석한 결과 매출액이 떨어진 곳은 70개였다. 매출액이 급감한 곳들도 눈에 띄었다. 강관 제조 업체인 A사는 2014년 지정 당시 매출액이 2700억여원이었으나 지난해 5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마그네틱·광학매체 제조 업체인 S산업도 지정 당시 매출액 665억여원에서 지난해 180억원대로 대폭 감소했다.

중기청은 지난해 중소기업의 수출 감소세에도 월드클래스 300 기업들은 전년 대비 수출이 3.3% 증가했다고 자축했다. 수출 규모로 1억 달러를 기록한 기업도 2013년 24개사에서 지난해 36개사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월드클래스 300의 성과라고만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수치는 중기청이 지난해까지 최종적으로 선정된 181개사의 연도별 매출 실적을 분석한 것이다. 월드클래스 300 선정 이전에 이미 수출 1억 달러를 올린 기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월드클래스 300과 인과관계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2011년, 2012년에 R&D 지원을 받은 기업 중에는 개발한 기술로 사업화에 성공하는 곳도 있지만 지난해 11월 중기청 평가 결과 사업화 성공률은 62%에 그쳤다.

중기청 관계자는 “월드클래스 300 사업은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벤치마킹했는데 독일 기업들은 대부분 규모가 큰 기업”이라며 “미래에 우리 산업을 책임질 수출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평균 매출액 1000억원선에서 중소·중견기업을 골고루 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제조업에 치우친 업종을 의료·바이오 등 신성장 분야로 넓혀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