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인 안대환 목사는 당시 경기도 광주에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를 설립하고 이주민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한창 사역에 매진하던 어느 날, 이슬람권 국가 출신의 노동자 한 명이 안 목사를 찾아왔다. 팍팍한 타국살이에 지친 청년이었다. 안 목사는 물심양면으로 청년을 도왔고, 한참을 벼르다 개종을 권했다. 하지만 청년은 정색하며 말했다. “값싼 도움으로 저의 종교적 신념까지 바꾸려 하진 마십시오.” 최근 경기도 광주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안 목사는 “이주민에게 무작정 개종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선교의 목적이 전도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들을 보듬고 보살피는 게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주민 선교 전략은?=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상당수는 중국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 비기독교 국가 출신이다. 한국교회가 이주민 선교에 나섰을 때 맞닥뜨리는 이주민 대다수가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을 무작정 전도하려고 해서만은 안 된다는 게 이주민 선교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충남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소장인 우삼열 목사는 “이주민을 전도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역효과만 날 것”이라며 “개종보다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보듬어야 한다는 ‘사회선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이주민에게 ‘건강한 리더’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외국인종합복지관 관장인 김봉구 목사도 생각이 비슷했다. 김 목사는 “이주민을 대할 때 처음부터 ‘예수 믿으세요’라고 권하며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는 것보다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게 이주민 선교의 기본”이라고 했다.
이주민 선교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외국인을 상대로 통역, 법률상담, 의료지원 등을 담당할 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안대환 목사는 “이주민 선교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전문적 지식과 충분한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급변하는 다문화 사회에 대비하려면 한국교회는 하루 빨리 이주민 선교를 담당할 전문가 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주민 선교, 한국교회의 생사를 결정지을 것”=전문가들이 이주민 선교가 필요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였다. 이주민 선교를 등한시하면서 내국인 목회에만 치중할 경우 훗날 한국교회가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다는 경고였다. 정부는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는 ‘인구절벽’ 현상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산이주민센터 대표 박천응 목사는 “내국인이 줄어들어 생긴 빈자리를 이주민이 채워주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한국교회에도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주민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한국사회가 버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봉구 목사는 “서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주민 비율이 10%를 넘나드는데, 우리나라 역시 인구의 10%인 500만명 수준으로 이주민이 급증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주민 선교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민선교 단체인 암미선교회 대표인 김영애 선교사는 “교회의 본분은 부흥이 아니라 선교”라며 “이주민 선교는 한국교회가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역”이라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이주민 200만명 시대 <하>] ‘사회선교’ 관점서 인프라 구축 나서야
입력 2016-07-20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