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아내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다시 민주당 서울특별시당 상근 수석부위원장으로 돌아왔다. 당 정책 전반을 비교분석하고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하는 자리였다. 정당의 궁극적 목표가 정권창출에 있기 때문에 정당의 정책은 매우 중요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더욱 중요했다.
2012년 총선이 다가왔다. 민주당은 여대야소 정국에서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해 야권연대를 추진했다. 내가 출마하기로 한 노원병 지역도 거기에 속했다. 나는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확정 받은 국회의원 후보였지만 선당후사(先黨後私) 차원에서 노회찬 후보에게 깨끗하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그리고 노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선 후 노 후보의 태도였다.
그는 나를 포함한 당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한번 없었다. 1년 후에는 통신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형이 선고돼 의원직까지 박탈당했다. 이후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이동섭입니다. 한번 만나서 보궐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는 훗날 자신의 아내를 공천했다고 했다. 실망감이 느껴졌다.
반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2013년 4월 보궐선거 때였다. 나는 19대 총선 당시 모 일간지 여론조사에서 49.4%를 얻을 정도로 높은 지지도를 갖고 있었다. 정치 입문 20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나와 무소속이었던 안 전 대표는 후보단일화 과정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동행으로 끝을 맺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날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여보, 할 이야기가 있어요.” “무슨 좋은 선거전략이라도 있어요?”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의 앞길을 막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니 당신이 안 후보에게 양보하면 어떨까요. 나라고 왜 당신이 출마해 국회의원 되는 게 싫겠어요. 하지만 안 후보는 대권 후보이고 당신은 국회의원 후보에요.” 아내와 나는 이 문제를 놓고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금식기도원에서 금식까지 했다. 그리고 후보직을 양보하기로 결심하고 안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기 강력한 대권후보인 안 후보께 총선 후보를 양보하겠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을 한두 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야권의 역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제가 희생하겠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나는 안 후보의 선거운동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유세에 나서자 수많은 청중들이 몰려들었다. 지구당 사무실에서 각 동·통·반별로 조직을 가동했다. 각 직능단체, 시민·체육단체, 향우회, 종교단체의 핵심 관계자를 만나 안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안 후보는 몸에 밴 겸손함과 인사성, 근면성실함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섰다. 결국 안 후보는 당선이 됐다. 상대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안 전 대표가 국회에서 의원선서를 한 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 위원장님 덕분에 제가 당선됐습니다. 많은 사람과 점심 약속이 잡혔지만 가장 먼저 모시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일정도 바쁘신데 나중에 하셔도 좋습니다.”
그 후 우리는 동지로서, 정치적 동반자로서 함께하게 됐다. 2014년 1월부터 나는 안 전 대표의 정무특보를 맡아 정치현안 등을 보필하며 정무기능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이동섭 <9> 야권연대 위해 총선-보선서 연거푸 후보 양보
입력 2016-07-20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