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입력 2016-07-20 21:18
강원도 고성 동호교회 채현기 목사가 다릅나무로 만든 십자가. 아래는 2002년 '듀크매거진' 표지에 실린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사진.
아름답다. 542쪽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덮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다. 정답 없는 삶 속에서 묵묵히 전진했던 한 신학자의 이야기는 ‘삶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저자는 1940년 미국 텍사스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신학자 반열에 오른 스탠리 하우어워스. 2001년 미국 타임지가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꼽고, 인문학 분야 석학들이 초청받는 스코틀랜드의 ‘기포드 강좌’에 강연자로 서기도 했다.

세계적인 신학자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기독교 진리를 연구하고 신의 존재를 사유하는 시간과 밥 먹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일상이 교차하는 신학자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보잘 것 없는 노동자 계급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절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던 아내와 24년간 유지했던 결혼 생활, 반대급부처럼 얻게 됐던 무수한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40대에 만난 사랑까지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첫 번째 아내 앤과의 결혼 생활을 빼놓을 수 없다. 앤은 삶의 모든 분노를 남편 탓으로 돌리고 자신과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들다 끝내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혼한 뒤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50대 후반에 울혈성 심부전으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앤과 함께 보낸, 지옥같았을지 모를 그 시간들마저 담담하게 적었다.

“나는 우리의 상황을 비극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비극보다는 비애감(pathos)이 우리의 결혼 생활을 기술하기에 더 적절한 단어 같다. 앤과 함께 살면서 나는 삶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288쪽)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 그리고 앤의 비극적인 죽음은 신학자인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사람들은 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오히려 내가 기독교 신학자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누구도 그런 질문에 대답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375쪽)

아내와의 관계 대신 그의 삶은 아들 애덤, 대학 안팎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채워졌다. 그가 오거스태나 대학, 노터데임 대학, 듀크대 신학대학원으로 옮기며 학생을 가르치는 동안 식탁교제를 하고, 학문적으로 교류하고, 그의 삶의 증인이 되어준 무수한 친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기독교 평화주의를 주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존 하워드 요더에 대한 서술이 시선을 잡아끈다. 요더와의 첫 만남부터 요더가 성 추문 문제로 논란을 빚다 징계를 받고, 다시 교회로부터 받아들여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었다. 또 40대에 듀크대 신학대학원으로 옮긴 뒤 만난 폴라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함께 살고 교회에 출석하며 맛보는 기쁨에 대해 솔직하게 써내려간 부분도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감리교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해 가톨릭을 거쳐 여러 교회를 전전하며 신앙을 이어가던 그가 채플힐 성공회교회에 정착하기까지 교회생활의 여정 또한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책은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20세기 후반 미국 신학의 다양한 논의 전개를 보여주는 신학 개론서처럼 읽힌다.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그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들려준다. 어떤 순간에도 여유와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짤막한 농담’을 잘하는 나의 재능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복음의 눈을 통해 세계와 우리 자신을 볼 줄 알게 되면 세상은 심오하게 희극적인 곳으로 변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잃을 것이 없으니 진실을 말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할까.”(247쪽)

책 제목 ‘한나의 아이’는 그의 어머니가 성경 속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기도했다는 데서 따왔다.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신학이 어떤 것인지, 무엇보다 꼭 신학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미국에서는 이 책을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견주는 서평이 적지 않았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고백록을 대체할 책은 없다지만 적어도 20세기 버전의 고백록이라 하기에 손색없어 보인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