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환 “나와의 얘기 대통령과 한 것과 같다” 압박 전화

입력 2016-07-20 00:41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9일 국회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동희 기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하며 20대 총선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계 핵심들에 이어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연루된 정황이 나타나면서 조직적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비박(비박근혜)계는 “친박 패권의 막장공천 실체가 드러났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총선 참패 책임론도 전가했다. 수세에 몰린 친박계는 ‘특정세력 공작설’을 제기하며 맞서 계파 갈등도 재점화됐다.

TV조선은 19일 현 전 수석이 지난 1월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화성갑 출마를 준비했던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해 출마지 변경을 요구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현 전 수석은 이 과정에서 “저와 약속을 하고 얘기한 건 대통령한테 약속한 거랑 똑같은 거 아니냐” “길어져 봐야 좋을 게 없다. 바로 조치하시라” 등의 말을 내뱉었다. 그는 “판단 제대로 하시라. 오늘 바로 하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대통령을 언급하며 최·윤 의원과 비슷한 취지로 압력을 가한 셈이다.

비박계는 총공세에 나섰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당 의원총회에서 “대통령 이름을 팔아 총선 공천에 개입한 사람들은 자숙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호가호위’ ‘공천개입’ 이런 말들은 이제 여의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비박계 당권 주자들은 국회에서 릴레이 기자회견을 펴며 협공을 폈다. 정병국 의원은 “당은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친박들은 계파 해체를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김용태 의원은 “대통령을 판 그 사람들에게 국민도 속고 대통령도 속으신 거냐”며 “박근혜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고 했다.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에게 “당의 이름으로 막장공천의 주역들을 검찰에 고발하라”고 요구도 했다. 주호영 의원도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의원이 김성회 전 의원에게 “내가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발언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런 표현들은 범죄 행위에 가까운 겁박”이라고 했다.

이번 녹취록 사건은 이른바 친박 핵심들이 대거 연루돼 있어 친박계로서는 치명적이다. 당 내부에서는 이미 “관련자들이 공천 공정성을 훼손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비박계가 “총선 참패의 최대 원인인 ‘공천 파동’의 발단은 ‘친박 패권주의’ 때문”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무성 전 대표도 “(경선) 당시에 당사자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며 “그 모든 걸 막는 장치가 상향식 국민공천제였다”고 거들었다.

친박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대항했다. 이우현 의원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김 전 의원은) 얼마나 비겁하냐. 남자의 세계에서 가장 인간쓰레기 같은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비박계 당권 주자들을 향해서도 “지지율 10%도 못 넘는 사람이 대표 하겠다고 지난 과거를 자꾸 얘기하는 건 대표 출마 자격이 없다”며 “김 전 대표 옆에 섰던 사람들도 다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녹취록 공개 시점을 부각하며 반격도 노렸다. 김태흠 의원은 “(녹취록이) 몇 달 지난 후에 전당대회 직전 폭로된 게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특정세력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는 “각별한 선후배나 동료의원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출마도) 권고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라며 “교통정리”라고 했다. 이장우 의원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녹취록이) 폭로됐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