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시장은… 넘쳐나는 돈 때문에 글로벌 ‘쿼드러플’ 강세

입력 2016-07-20 00:41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한은·대외경제연구원·피터슨연구소 공동 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브렉시트라는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가운데 일어나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이 나타났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잠깐 흔들린 뒤 오히려 주식 채권 부동산 금(金) 등 주요 자산 가격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주요국의 리플레이션(reflation) 정책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리플레이션은 불황기에 심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통화 완화, 재정 확대로 경기 회복을 도모하는 ‘통화 재팽창’을 뜻한다.

지금처럼 버블이 확산되면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각국은 아직은 멀어 보이는 버블보다 당장의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두렵기 때문에 리플레이션 정책을 멈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주식· 국채 함께 오르는 기현상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은 가격이 보통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최근에는 둘 다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마이너스 금리가 확대되는 세상에서 수익에 대한 압박이 강해져 주식과 채권의 근본적인 관계가 깨졌다”고 전했다.

19일 코스피지수는 4.22포인트(0.21%) 내린 2016.89로 마감했지만 전날까지 6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단기 랠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일 뿐 증권가에서는 코스피가 직전 고점(2040포인트)을 회복하고 8월까지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현재의 활황 분위기를 감안해 하반기 코스피 목표 상단을 기존 2100에서 2200포인트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 3대 주가지수인 다우존스, S&P500, 나스닥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미국 증시는 아직 고점이 아니며 적어도 오는 12월까지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3일 독일 10년물 국채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는 등 선진국 국채 금리는 급락 중이다. 국채 금리가 내렸다는 것은 국채를 찾는 수요가 넘쳐 가격이 올랐음을 뜻한다. JP모건 글로벌 채권 투자총수익 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수익에 대한 갈증 때문에 주식과 국채 가격이 함께 치솟고 있다. 투자회사 리지워스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마이클 언더힐은 “현금을 갖고 있다가 1.5% 인플레이션으로 손실을 보느니 채권 투자로 1.2∼1.5% 수익을 얻거나 배당을 주는 주식에 투자해 3∼5% 수익을 챙기는 게 현재의 시장 환경에서 평균적인 투자자들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무제한 ‘돈 풀기’로 자산 가격 상승

최근 수년간 부진했던 원자재 가격도 움직이고 있는데, 그중 금값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7월 온스당 1100달러를 밑돌던 국제 금 가격은 현재 1330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네덜란드 최대은행 ABN암로는 3분기 금 가격이 온스당 1425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부동산 가격도 급등세여서 글로벌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투자총수익 지수 역시 연일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다.

왜 이처럼 자산 가격이 일제히 강세를 보이는 걸까. NH투자증권 오태동 연구원은 “넘쳐나는 돈 때문으로, 유동성의 낙수 효과가 어려 자산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이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너나할 것 없이 돈을 풀다보니 유동성이 넘쳐나게 됐다.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2014년 10월에 중단했지만 유럽 일본 중국 등은 돈 풀기 속도를 더 높이고 있다. 미국 유로존 일본 중국 중앙은행의 자산규모 합계는 17조2000억 달러로 전년 말보다 10.6%나 증가했다. 자산 매입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살포하다보니 이렇게 총액이 불어난 것이다.

멈추지 못하는 리플레이션 정책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주식과 채권 모두 비싸져서 급매도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테미스 트레이딩의 마크 케프너는 “브렉시트 관련 뉴스 헤드라인에 변화가 일어나거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을 언급하는 순간 주식시장이 급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자산에 거품이 낀 상태로 다들 장기적인 버블 붕괴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리플레이션 정책을 거둬들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이 앞서 겪은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리플레이션 정책을 계속 펴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요국 실물 경기는 여전히 부진하고 구매관리자지수(PMI) 같은 심리지표도 아직 뚜렷한 반전 신호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소규모 개방경제엔 이중고

주요국 통화 팽창으로 넘쳐나는 돈은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이중고(二重苦)를 안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피터슨 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실물 면에선 수출 부진에 따른 성장세 둔화, 금융 면에선 자본 유출입과 환율 등 가격 변수의 높은 변동성”을 이중고로 지목했다. 이 총재는 “개방경제의 중앙은행들은 경기 회복을 지원하면서도 대외 충격에서 비롯되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증대에 대응해야 하는 복잡한 정책 여건에 직면했다”면서 “통화정책은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는 가운데 금융안정 리스크에 각별히 유의하는 방향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지우 우성규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