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53) 교사는 지난 4월 12일 저녁 경기도 시흥 한 술집에서 송모(41) 교사에게 “이번 모의평가에 들어가면 문제를 잘 기억해 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다. 송 교사는 6월 2일 치러질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에 앞서 국어 영역 검토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박 교사는 송 교사에게 문제 유출을 주문하면서 “아무래도 ‘이 강사’가 잘돼야 우리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강사는 유명 학원강사 이모(48)씨였다. 박 교사는 이 강사와 수년간 ‘거래’를 해온 사이였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이 강사에게 교습용 문제를 만들어주고 받은 돈이 약 3억6000만원이었다. 박 교사가 문제당 3만∼5만원씩 모두 1억원을 나눠주며 ‘하청 출제’를 맡긴 동료 교사 7명 중에 송 교사도 있었다.
그달 15일 모의수능 검토위원으로 들어간 송 교사는 출제 정보를 외운 상태로 28일 퇴소했다. 그는 다음 달 10일 시흥의 박 교사 집 앞으로 찾아가 그 내용을 읊었다. 자신의 차 안에서 만난 박 교사에게 전달한 출제 정보는 구체적이었다. 특히 문학 작품은 지문으로 출제된 7개 작품을 정확히 찍어 줬다. “시나 수필은 복합지문으로 구성됐다”고 출제 경향도 덧붙였다.
비문학(독서) 부문에 대해서는 “지문이 3개 나왔는데 그중 제일 긴 게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주제다. 인문 분야는 동물실험 찬반에 대한 ‘유비논증’, 기술 분야는 ‘인공지능’ 관련 지문이 나왔다”고 알려줬다. 이렇게 국어 영역 전체 지문 12개 중 8개 정보를 유출했다. 문항으로는 전체 45개 중 71%인 32개에 해당했다.
박 교사는 6일 뒤인 5월 16일 저녁 서울 강남구의 노래방에서 6월 모의수능 정보를 이 강사에게 전달했다. 이 강사는 바로 다음 날인 17일부터 24일까지 비공개 현장 강의 등에서 학생들에게 이 내용을 언급했다. 이들은 지난달 초 시험 이후 학원가에 소문이 퍼지면서 꼬리가 잡혔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수사 결과 송 교사→박 교사→이 강사 순으로 6월 모의수능 출제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 강사를 최종적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강사는 지난 11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범행을 주도한 박 교사는 지난달 14일 같은 혐의로 긴급 체포돼 구속됐다. 범행을 인정한 송 교사와 달리 이 강사와 박 교사는 경찰 조사 마지막까지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이 강사가 학생들에게 언급한 내용은 우연의 일치나 경험만으로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특정됐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라며 “참고인들의 진술과 정황증거 등으로 범죄혐의가 소명됐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이 강사의 지인에게 “내가 출제 대가로 받는 돈에는 출제 문제와 출제위원 정보를 빼오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과거에도 박 교사가 수능 관련 출제·검토위원으로 참여하면 직접 이 강사에게 출제 정보를 건네주고 참여하지 못하면 다른 위원에게 출제 정보를 빼내려고 한 정황을 포착했다. 박 교사는 2007년부터 수능 출제·검토위원으로 3차례, 모의평가 출제·검토위원으로 9차례 참여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추가 확인에 나설 계획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모의평가 문제 기억해 오라” 모의수능 문제 유출 재구성해보니…
입력 2016-07-20 00:28